오피니언 시론

오바마 외교력 시험할 중동 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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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2008년 마지막 날에도 공습은 이어졌다. 지난 5일간 무려 37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 수도 1700여 명을 넘어섰다. 희생자 중에는 어린이 39명을 포함해 민간인 60여 명이 포함돼 있다. 하마스도 250발 이상의 로켓탄을 발사하며 맞서고 있다. 현재까지 최소 4명의 이스라엘인이 숨지고 수십 명이 부상했다.

상황은 계속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예비군 동원령을 내리는 등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가자지구 접경지대로 병력을 속속 집결시키고 있다. 반면 하마스는 자살공격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결사항전에 나설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제3차 민중봉기(인티파다)’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양측 간 전면적 충돌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가 이번 사태에 주목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미칠 악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무관할 수 없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하락하던 원유값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이번 사태 이후 이미 10% 가깝게 올라갔다. 유가의 재상승은 우리의 경제위기 타파 노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것이다.

또 이스라엘 국경에서 불과 50km 떨어진 레바논 남부 티르 지역에는 우리의 동명부대 장병 300여 명이 평화유지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충돌이 중동 지역으로 확산될 경우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레바논 남부에 거점을 둔 무장세력 히즈불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대원들에게 출동준비 태세를 지시했다.

국제사회의 우려는 심각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무차별 공격에 따른 막대한 인명피해는 ‘인도주의의 위기’라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모두 폭력을 중단하도록 국제사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이미 세 차례나 성명을 발표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유혈분쟁의 장기화를 막아야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지지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공정한 해결에 장애가 돼온 것은 사실이다. 이라크에서 전면전을 펼친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번 사태 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결국 이번 사태는 3주 후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의 숙제로 넘어가게 됐다. 오바마 행정부가 그동안 많은 부작용을 양산한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탈피해 세계의 공정한 중재자로 거듭나길 바라는 국제사회의 요구가 많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 역시 친이스라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는 지난해 7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자리에서 “내 딸이 잠든 방에 폭탄을 쏘는 자들이 있다면 나 역시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로 이스라엘의 강경책에 동조했었다. 어쨌든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국무장관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팔 분쟁 해결의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최종적인 사태 해결은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몫이다. 당장 하마스 측은 민간인을 목표로 한 테러 공격을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군사 대국인 이스라엘은 약자에 대한 과도한 군사적 대응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휴전 협상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휴전협상은 늘 불안정하다. 60여 년간 양측의 주장은 평행선을 걸어 왔다. 오히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중동 유목민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보복의 악순환만 이어졌다. 궁극적으로 타협하겠다는 태도, 공존하겠다는 의지 없이 이 지역의 평화적인 사태 해결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중동아프리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