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브이세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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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하철로 연결되는 버스 정류장에서 옥정과 함께 내린 용태와 도철은 일단 신도림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그 지하철 노선에는 신림,신대방,신도림,이와 같이 신(新)자가 붙은 역들이 꽤 이어져 있었다.이러다가는 얼마 있지 않아 동마

다 역마다 신자가 붙을지도 몰랐다.차라리 수도 이름도 신서울로 고치고 나라 이름까지 신대한민국으로 고치지 그래.도철은 신대방역을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신도림역은 바다나 강으로 따지면 그야말로 울돌목이었다.인파가 이쪽에서 밀려들어와 저쪽으로 밀려나가고,이 구멍에서 새어나와 저 구멍으로 스며들어가며 서로 휘감기고 엉키며 소용돌이쳤다.그래도 지금 시각은 좀 나은 편이었다.출퇴근 시간

이면 인파의 소용돌이는 거기에 한번 빠지면 영영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거세기만 하였다.정원의 수십 배에 해당하는 인원이 남녀노소 구별없이 한데 짓뭉개져 전동차 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남자가 남자 뒤에 붙어 서 있으면 동성연애 비역질이 되고,여자가 여자 뒤에 붙어 서 있으면 밴대질이 되고,남자가 여자 뒤에 붙어 서 있으면 성추행이 되고,여자가 남자 뒤에 붙어 서 있으면 아무 짓도 되지 않았다.

한번은 짓궂은 어느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이렇게 미어터지는 전철 안에서 성추행을 하는 남자들을 적발하기 위해 경찰 당국과 짜고 몰래 카메라를 돌린 적이 있었다.그것은 마치 성적 충동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속으로 모르모트들을 몰

아넣고 그 반응을 관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모르모트는 성적 충동에 덜 민감하게 반응했고,어떤 모르모트는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덜컥 목덜미가 잡혀 끌려나갔다.그 방송국 기자들은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 듯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지하철이 지옥철로 변해가는 정책 부재의 심각한 교통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그런 지하철은 누가 협박을 한 것처럼 차라리 폭발을 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은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그 지옥철 인파를 향하여 외쳐대는 전도자의 목소리가 신도림역 가득히 울려퍼졌다.용태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전도자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그가 들고 있는 핸드 마이크에 몸을 세게 밀어붙여 핸드 마이크가 땅바닥으로 떨어지도록 하였다.

떨어진 핸드 마이크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여 계단으로 때그르르 굴러떨어졌다.

“아이쿠,미안합니다.뒤에서 사람들이 미는 바람에. 왜 이리 사람들이 많지.”

용태가 전도자에게 사과의 말을 하며 뒤에서 떠미는 사람들을 짐짓 흘겨보았다.

“예수 지옥! 불신 천당!”

전도자가 당황한 나머지 맨입으로 구호를 반대로 외쳐대며 핸드 마이크를 주우러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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