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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상가에 자리 편 ‘녹색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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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임대가 안 돼 수년째 비어 있던 상가를 활용한 녹색가게가 서울 강북 번동 주공5단지에 생겼다. 녹색가게는 생활용품 재사용을 유도하고 판매 수익금을 지역사회에 쓰는 공익시설이다. 녹색가게가 주민자치센터나 구민회관 같은 공공 건물에 주로 생기던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서울 번동 주공5단지 아파트 상가에 문을 연 녹색가게에서 류재현 아파트 관리소장(右)이 주민에게 물건들을 보여주고 있다. [안성식 기자]


‘상가 안 녹색가게’는 이 아파트 관리소장 류재현(41)씨와 주택공사의 역발상 덕분에 탄생했다. 지난해 11월 아파트 관리를 맡은 류 소장은 상가 지하 1층 일부가 임대되지 않고 비어 있는 것을 유심히 살폈다. 상가는 지하 1층 지상 9층짜리 주상복합건물에서 지하 1층과 지상 1층 모두 2개 층을 쓰고 있었다. 꽉 차 있는 1층과 대조적으로 지하 1층은 점포 6개 자리 중 3개가 임대가 나가지 않았다. 상권 형성이 안 되는 데다 지하는 접근성이 특히 안 좋았기 때문이다.

1년 동안 빈 점포를 지켜보던 류 소장은 “녹색가게를 만들면 아파트 주민들이 생활용품을 쉽게 구할 수 있고, 판매 수익금으로 단지 안의 불우이웃도 도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1123 세대가 사는 아파트 주민 중 30% 정도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다.

결국 올 11월 상가 소유주인 주택공사에 무상 임대를 요청했다. 주공은 “녹색가게가 생기면 나머지 점포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겠다”며 제안을 수락했다. 지하 1층 전체 면적 285㎡ 중 절반이 넘는 175㎡를 녹색가게에 내놓고, 리모델링 비용 1000만원도 지원했다. 일반 임대를 하면 받을 수 있는 보증금 2100만원과 월 임대료 36만원은 포기했다. 주공 서울지사 김대욱 차장은 “류 소장의 의지가 강했고, 수익금을 지역에 재투자한다는 제안이 참신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녹색가게는 24일 태어났다. 아파트 부녀회 회원 10명과 인근 주민 10명 등 20명이 번갈아 운영을 맡고, 노하우는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에서 제공받는다. 이 단체의 김정지현 협동처장은 “전국의 녹색가게 40여 곳 중 상가 안에 생긴 것은 번동 주공5단지가 처음”이라며 “헌옷·장난감·책 등을 주민들이 함께 나누고 재활용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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