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정치인 수사에 숨통 -검찰, 정태수씨 발언은 뇌물 암시로 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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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태수(鄭泰守)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 확대가 불가피하게 됐다.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서 한보그룹 정태수총회장과 김종국(金鍾國)전 재정본부장이 7일과 8일 잇따라 여야 정치인들에 대한 자금제공을 사실상 시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검 중수부는 수사기록 검토에 착수하는 한편 구속중인 鄭총회장과 金전본부장을 소환해 정치인들에 대한 금품제공 경위와 목적등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조만간'리스트'의 전모가 드러날 전망이다.

중앙수사부 김상희(金相喜)수사기획관은 이날 이례적으로“청문회 증인들의 진술을 종합 검토중이다.鄭총회장등의 진술중 여과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사실확인및 진위 여부를 밝히기 위해 구속 피고인에 대해 조사

를 벌일 것”이라고 천명했다.

검찰이'여과되지 않은 부분'이라고 지적한 대목은 바로 鄭총회장이 청문회에서“돈을 주면 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말하지 않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즉 鄭총회장은'정태수 리스트'에 포함된 정치인들에게 전달된 자금이 형사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 정치자금이 아니라'뇌물'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범죄구성 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검찰에 재수사 착수의 명분과 단서를 제

공한 꼴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鄭총회장과 金전본부장은 동료 정치인들의 혐의를 벗겨주려는 의도가 숨겨진 특위 위원들의 집요한 유도신문에도 자금제공 사실이 없다고 적극 부인하지 않은채“직원들이 했다”고 시인하거나“확인해줄 수 없다”“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

으로 일관했다.

결국 鄭총회장과 金전본부장의 청문회 증언은'정태수 리스트'의 폭발성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든,아니면 형사처벌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든간에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전면 재조사를 촉발시킨 요인이 됐다.

한 수사 관계자는“검찰은 그동안'정태수 리스트'의 존재를 시인하면서도 범죄 구성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해당 의원들을 조사하지 않았다”면서“그러나 鄭씨등이 국민들 앞에서 뭔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 이상 더이상 이를 덮어둘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따라서'리스트'에 포함된 여야 의원들과 자치단체장들은 물론 정치권 전체에 또 한차례 사정한파가 몰아칠 전망이며 대선 구도에까지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권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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