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명과학 “생명을 위해서라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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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수익성이 떨어지면 문을 내리는 것이 기업의 생리다. 더욱이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는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마른 수건’조차 쥐어짜게 마련이다. 그런데 LG생명과학은 한 해 수억원대의 손실을 무릅쓰고 희귀병인 만성육아종 치료제 ‘인터맥스 감마’(사진)를 생산한다. 손익분기점에 이를 때까지 참자는 것이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손실액은 점점 더 불어난다. 하지만 이 병을 앓는 100여 명의 환자를 모른 체 할 수 없어 생산라인을 멈추지 못한다. 회사 입장에선 사회공헌 비용으로 잡히지 않는 사회공헌이 된 셈이다.


LG생명과학도 한때 생산 중단을 고려했다. 막대한 개발비를 들여 1991년 시판한 ‘인터맥스 감마’는 출시 후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출시 이후 몇년간 연 1억원 정도를 팔아 3억∼4억원의 손실을 냈다. 사업성이 보이지 않았다. 연구개발할 당시엔 간 질환 등 다른 질병의 치료제로도 기대됐지만 다른 좋은 약품이 개발되면서 ‘인터맥스 감마’는 만성육아종 환자와 일부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에게만 필요한 약이 됐다. 문제는 만성육아종 환자가 국내에 100여 명뿐일 정도로 희귀병이라 시장이 작다는 점이었다. 수익성만 따지면 생산을 접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2003년 LG생명과학이 생산 중단을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만성육아종 환우회(환자와 가족의 모임)가 발칵 뒤집혔다. 세계적으로 이와 비슷한 효능을 지닌 약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인터뮨이라는 제약사의 ‘액티뮨’밖에 없다. 그러나 ‘인터맥스 감마’는 보험 적용을 받으면 주사 한 대에 2만4761원이지만 ‘액티뮨’은 열 배나 비쌌다. 만약 LG생명과학이 약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환자 부담이 당장 10배가 될 판이었다.

LG생명과학의 박철하 부장은 “생산 중단을 검토했을 땐 수익성만 눈에 보였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환자들에게 이 약은 생명이나 마찬가지라는 공감대가 번졌다는 것. 당시 최고경영진은 숙고 끝에 ‘매년 3억~4억원 손실로 인명을 구할 수 있다면 계속 생산하는 게 옳다’고 결정했다. 서울대병원의 만성육아종 전문의인 김중곤(소아과) 교수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약은 품질관리에 손이 많이 가 회사가 뒷감당하기가 힘들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이 생산 재개를 결정한 뒤 약의 유효기간이 임박하면 전부 새 걸로 바꿔주기까지 해 고마웠다”고 했다.

LG의 다른 계열사인 LG전자·LG텔레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는 휴대전화’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LG전자는 2006년 1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이 휴대전화기를 처음 개발한 뒤 올 7월 5억원을 더 들여 업그레이드했다. LG텔레콤은 별도의 소프트웨어 개발비 5억원을 들였고, 이 밖에 수억원을 들여 이 휴대전화기를 구입해 지금까지 3500여 명의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이 휴대전화를 LG상남도서관이 운영하는 ‘책 읽어주는 도서관’에 접속해 도서 텍스트파일을 내려받으면 음성으로 변환해 읽어준다. 이를 통해 ‘책 읽어주는 도서관’을 이용할 때 필요한 인터넷 접속료와 콘텐트 내려받기 요금도 무료다.

안혜리 기자

◆만성육아종=체내에서 박테리아와 같은 세균을 잡아먹는 역할을 하는 대식세포의 결함이 원인이 돼 나타나는 선천성 면역결핍질환이다. 세균에 쉽게 감염돼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대개 한 살 이전에 발병하지만 10대 이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10세 이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25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하며, 국내에는 100여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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