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 강남의 ‘종부세 환급금 1% 기부’ 운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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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02면

종합부동산세 환급금의 1%를 기부하자는 캠페인이 26일 서울 강남구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어는 지역 여성 모임에서 나왔다고 한다. 미혼모 등 어려운 처지의 여성을 돕고, 저소득 여성 가장의 창업자금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늘어나는 요즘 어느 모로 보나 반가운 일이다. 전국의 종부세 환급액은 세대별 합산으로 부과된 6300억원, 1주택 장기 보유자에게 부과된 2700억원 등 대략 1조원으로 추산된다. 1% 기부가 확산된다면 적지 않은 돈이 모일 것이다.

일각에선 호응이 시원찮을 것이라는 지레짐작도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하지 않는 강남 부자들이 얼마나 기부하겠느냐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강남 부자들은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이웃 돕기 성금이나 적십자회비가 서민이 많이 사는 동네보다 덜 걷힌다. 지방세 상습 체납자는 강남에 몰려 있다. 강남구에 하나뿐인 보육원인 강남보육원의 기부자 면면을 봐도 그렇다. 거의 다 가난한 사람들이다. 황양수 원장은 “올해 기부금이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것은 기부자가 대부분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은 진짜 서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색한 기부 문화가 어디 강남 부자만의 문제이겠는가. 외국의 기부 문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나눔과 되돌림에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식민지·전쟁·산업화를 거쳐 숨가쁘게 살아온 터라 남에게 베풀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한곳에 기부를 하면 다른 곳에서 ‘우리도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투명성이나 사명감이 부족한 기부단체 역시 부자들의 손을 머뭇거리게 한다. 그뿐이랴. 숨은 기부 천사의 실명이 밝혀지면 ‘저의가 있다’고 악플이 쏟아지는 게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핑계는 핑계일 뿐이다. 진정한 나눔은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오 헨리의 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오랜 시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는 것도 그래서다. 소설에서 부인은 남편의 시곗줄을 사기 위해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자르고, 남편은 부인의 머리빗을 사기 위해 시계를 판다. 가난한 부부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잃었지만 나눔을 통해 더 큰 기쁨을 누렸다.

연말연시엔 나눔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특히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올해, 나눔의 의미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흔히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한다. 기부는 기쁨을 두 배로 키우는 일이다. 최악의 경제난과 구조조정의 칼바람으로 얼어붙은 이웃의 가슴을 녹이고 우리 공동체의 건강과 희망을 키우는 일이다. 종부세 환급금 기부가 ‘나눔 온도계’를 덥힐 화롯불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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