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정태수씨 만번 물어도 같은 대답 - 증언첫날 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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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구치소에서 7일 오전9시20분부터 시작된 정태수(鄭泰守)한보 총회장을 상대로 한 국회 한보조사특위의 국정조사는 특위위원들이나 鄭씨 모두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려 14시간10분동안 비슷비슷한 내용의 질문과 답변을 거듭했다.

…왼쪽 가슴에 수인번호'2952'를 부착한 정태수(鄭泰守)씨는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머리를 단정히 빗어넘겼다.

그는 허정훈(許正勳).정태류(鄭泰柳)변호사와 함께 나란히 자리에 앉아 양팔을 의자에 걸친채 오전 신문동안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줄곧 시선을 밑에 둔채 시무룩한 표정.이때문에 의원들로부터“왜 눈을 뜨지 않는거냐.

지금 잠을 자느냐”는 힐난을 받았다.

그러나 鄭씨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난뒤에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내세워 방어했다.

설명도중 갑자기 목청을 높이기도 했고 큰소리에 대해 지적을 받자 웃음을 띠는등 여유있는 모습도 보였다.

鄭씨는 신문도중“왜 답변을 하려하지 않나.답변을 안하면 국회모독이 될 수 있으니 옆에 있는 변호인과 잘 상의하라”는 의원들의 독촉에 단 한차례도 옆에 앉은 변호인과 상의하지 않은채“나의 분명한 생각은 그렇다”고 또렷하게 답변했다.

그는 오전 신문중 준비해온 약을 복용하기도 했지만 장시간 신문에도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鄭씨가“나는 홍인길(洪仁吉)의원을 하늘로 봤다”고 말한데 대해 그 진의를 둘러싸고 논란.

신한국당 맹형규(孟亨奎)의원의 오전 질의에 대해“홍인길 하늘”을 운운했던 鄭씨는 같은당 박주천(朴柱千)의원이 오후에“하늘의 뜻이 뭐냐”고 다그치자“그냥 洪의원이 나한테 대출도 많이 해주고…”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이날 신문에선'정태수도를 비난.그러나 李총무는“오전 신문에서 鄭총회장이 자민련 김용환(金龍煥)총장에게 간접적으로 돈을 줬다는 내용의 진술을 했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는 질문에는“절대로 그렇지 않다.안그래도 오전 간부회의에서 金총

장에게 확인했으나 金총장은 간접으로도 절대로 그런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확언했다”며 정태수 리스트는 자민련과 관계가 없음을 강조.

…이날 신문에선'정태수리스트'를 확인한 중앙일보 7일자 보도가 자주 등장.첫 질의자인 이신범(李信範.신한국)의원으로부터 시작,모든 의원들이 중앙일보 보도를 거론하며 鄭총회장에게 리스트의 진위여부를 확인요청.

김문수(金文洙.신한국)의원은 鄭씨가 계속 의원들 명단을 공개하지 않자 중앙일보 내용을 복사한 것을 鄭씨의 직원을 통해 건네준뒤“이게 사실이 아니란 말이냐”고 다그쳤다.

鄭총회장은 건네받은 중앙일보 내용을 한동안 유심히 살펴보다“재판에 관련된 내용이므로 신문에 난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다”고 일단 답변을 유보.

그러나 곧이어 신문에 나선 이사철(李思哲.신한국)의원이“중앙일보를 봤느냐.중앙일보가 보도한 정태수리스트 17명을 보면 홍인길의원등 4명이외에는 재판과 관련이 없는 이들이다.그러므로 나머지 13명에 대해선 말해도 된다.13명에게 돈

을 준 것은 사실이냐”고 매섭게 몰아붙이자“사실이다”고 시인,결국 중앙일보 보도내용을 최종 확인.

…현경대(玄敬大)특위 위원장은 서울구치소 청문회가 두번째.그는 3년전인 94년 법사위원회에서 상무대 청문회를 할때도 위원장으로 서울구치소를 방문했다.

玄위원장은“상무대 청문회때는 TV생중계는 안됐지만 증인이었던 조기현(曺琦鉉)청우종합건설 회장이 의원들을 거의 데리고 놀았다(?)”며“鄭총회장은 그만해도 나은편”이라고 말했다.

玄위원장은“내가 문민정부의 시작과 끝을 청문회로 마치는 셈”이라며“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숨.

…관심을 끌었던'교도소밥' 논란은 오전 청문회가 끝난뒤 여야 의원들이 청문회장 바로 옆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으로 일단락.여야 의원들은 구설수를 의식한듯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옆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막은뒤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서울구치소엔 아침 일찍부터 방송 3사와 YTN뉴스의 중계차들이 몰려와 북적댔고 현장에 임시 스튜디오까지 설치해 놓고 생중계까지 해 여론의 높은 관심을 반영.구치소측에선“서울구치소를 거쳐간 정치인.유명인사도 한두명이 아니지

만 이런식의 하이라이트를 받는건 처음”이라며 씁쓸한 표정들.

…김민석(金民錫.국민회의)의원은 이날 신문한 의원중 그나마 날카롭게 鄭총회장을 몰아붙였다는 평.金의원은“수재의연금도 가장 많이 내고,임직원 격려비도 2천만원씩 집어주는가 하면 여당 의원들에게도 개인적으로 돈을 준적이 있는 鄭증인이

金대통령에게는 개인적으로 대선자금을 주지 않았다니 이해가 안 간다”고 추궁.

金의원이“증인은 90년에 盧전대통령에게 1백억원을 주고도'수서사건 수사 때는 검찰이 수서만 물어봐 대답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당시 검찰은 다른 자금제공 의혹도 물어본 것으로 나와 있다”고 따지자 鄭씨는 고개를 숙인채 묵묵부답이었다.

金의원은 또“사별한 전 사모님과 하늘나라에서 곧 만나게 될텐데 부끄럽지도 않으냐.증인은 인생의 끝을 생각하고 자식들과 그 세대에게 손가락질받지 말아야 한다”고 일장 훈계. 〈김종혁.김현기 기자〉

<사진설명>

중앙일보에 나지않았느냐…

7일 한보청문회에서 신한국당 이사철의원이 중앙일보 7일자 1면에 보도된'정태수리스트'에 대한 확인질문을 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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