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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예쁘게 살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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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호 15면

서울이 예뻐지고 있다. 슬럼으로 전락한 세운상가 단지가 허물어진다. ‘한강 르네상스’ 계획이 실현되면 시민들은 한강에 좀 더 쉽게 접근해 다양한 ‘시추에이션’을 즐기게 된다. 한옥을 현대 주거에 맞게 보수해 오래 보존하겠다는 ‘북촌한옥선언’은 서울의 정체성과 매력을 살리기 위한 적절한 시도다. 서울이 예뻐지면 서울 시민도 좀 더 예쁘게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시도들은 관이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여기에 민이 이끄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도심이나 한강, 북촌 같은 특정 지역도 중요하지만 서울의 골목골목도 프랑스 파리처럼 작고 좁고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가꿔져야 하니까. 그래야 그 안에 사는 우리도 지금보다 더 많이 웃으며 살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이뤄진다면 그 중심에는 ‘근생건물’이 있어야 한다.

근생’이란 ‘근린생활시설’의 줄임 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편의점·세탁소·당구장·식당·학원 등이 있는 5~6층짜리 이름 없는 건물이 다 근생건물이다. 우리 몸의 영양 상태를 결정하는 건 ‘요리’가 아니라 ‘음식’인 것처럼 우리 생활의 질과 주변 풍경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도 대로변 빌딩이 아니라 동네 근생건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생건물은 ‘건물주의 더 많은 이윤’만을 위해 지어진다. 건물은 사유재산이므로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수준 높은 사회에서는 근생건물 하나에도 동네와 이웃에 대한 배려와 미적인 고민이 담긴다.

얼마 전 근생건물을 통한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발견했다. 청담동 언덕에 세워진 ‘바티 리을’. 로디자인의 김동진 소장이 설계한 이 5층짜리 작은 건물은 흔한 근생건물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과 선의와 시도를 담을 수 있는지 재미있게 보여준다. 우선 입구가 개방돼 있고 바깥 풍경을 보며 오르도록 계단이 드러나 있어 한번 들어가 보고 싶어진다.

근생건물에 잘 시도되지 않는 테라스가 있어 입주자들은 늘 시원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각 층은 조금씩 각도가 틀어져 있어 저마다 다른 풍경을 끌어들이며, 지나는 행인에게도 답답한 ‘덩어리’ 대신 ‘ㄹ’자 모양의 재미있는 외관을 선물한다. 이런 시도와 배려는 임대 면적을 손해 보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진행돼 건물주도 만족할 수 있게 했다.

이런 근생건물이 늘어나 건물주에게는 좀 더 많은 임대 수익을, 입주자와 이웃한테는 좀 더 쾌적한 생활 공간을 선물해야 한다.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다. 개혁의 목표는 ‘사려 깊고 예쁘게 지어 다 함께 즐겁게 살기’다.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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