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칼 같은 구조조정과 과감한 지원이 살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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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내년 1월부터 건설·조선 업계에 대한 구조조정을 속도전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지식경제부는 일부 완성차 업체의 유동성 부족을 돕기 위해 연구개발(R&D) 자금의 저리 융자를 검토 중이고, 쌍용차의 중국 대주주는 정부와 금융회사에 자금 지원을 요청할 움직임이다. 대우조선을 인수한 한화그룹은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자 산업은행에 본계약 체결 연기를 요구했다는 소식이다. 금융불안과 실물경제 침체가 본격적으로 산업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채권단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인 구조조정 작업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옥석 가리기는 경제위기 탈출의 선결 과제다. 경기 전망이 자꾸 나빠지는 상황에 비춰 부실기업이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외환위기 때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이 자금흐름과 금융회사의 자산건전성을 해치고 부실만 키운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다. 이미 일부 업체는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경쟁력을 상실한 게 사실이다. 경기가 회복돼도 세계 시장에서 설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이런 기업은 일자리 유지에 매달리기보다 차라리 하루빨리 도태시키는 편이 훨씬 현명한 판단이다. 정부와 금융업계가 칼 같은 원칙으로 퇴출 대상을 신속히 솎아내기 위해 결단을 내릴 시점이다.

두말할 필요 없이 살릴 기업에는 분명한 자구노력을 요구해야 한다. 주주들과 노조의 희생과 양보를 통해 강도 높은 자구계획을 실천하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살릴 기업으로 판단되면 과감한 지원으로 확실하게 살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대출자금의 만기연장이나 인수자금의 분납, 필요하면 신규여신 제공까지 총동원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산업과 기업을 살릴 수는 없다. 경제위기가 깊어질수록 더 많은 기업이 정부와 금융회사에 손을 내밀 것이다. 이럴 때는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칼 같은 기준을 세우고 절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구조조정에 따른 잡음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