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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선수, 즐기는 축구 … ‘차붐의 꿈’이 무르익어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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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차범근 감독中이 24일 과천시민회관 체육관에서 열린 차범근축구교실 송년 페스티벌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과천=이호형 기자]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넣은 한국 축구의 전설. 올해 프로축구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석권한 명장. 이는 차범근(55·수원 삼성) 감독의 진면목의 절반에 불과하다.

2001년 차 감독의 사진 한 장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강추위로 서울 한강변의 차범근축구교실 운동장이 얼어붙자 직접 망치를 들고 얼음을 깨는 장면이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감독에서 낙마한 이후 야인 시절, 차 감독은 축구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씨름하며 한국 축구의 미래를 설계했다. 차 감독의 부인 오은미씨는 “그때 대학교수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쪽을 택했던 양반”이라고 말했다.

23~25일 경기도 과천시 시민회관 체육관에서는 실내 축구대회 형식으로 ‘차범근 축구교실 송년 파티’가 열렸다. 체육관을 누비는 아이들에게 승부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흘 내내 자리를 지킨 차 감독은 웃고 까불며 공과 함께 뒹구는 아이들을 “한국 축구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강압적으로 만드는 축구 기계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기도록 하는 게 축구 강국의 밑거름”이라는 것이다.

차 감독은 “문전 처리 미숙이라는 질타를 받을 때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맺혔다. 그건 성인이 된 후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 축구를 어떻게 즐기고 배우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은퇴 후 90년 1월 귀국한 차 감독이 맨 처음 한 일이 어린이 축구교실을 만든 것이었다. “큰아들 두리는 5살 때부터 레버쿠젠 어린이 클럽에서 공을 찼다. 78년에 일본에서 열린 대회에 갔는데 일본이 그때부터 어린이 클럽을 육성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90년 5월 약 50명으로 첫발을 뗀 축구교실은 부침을 겪으며 성장, 올해는 연간 회원이 1000명을 넘어섰다. 전 국가대표이자 MBC ESPN 해설을 맡고 있는 이상윤 수석코치를 위시해 코칭 스태프만 17명이다.

회원 대부분이 축구를 놀이 삼아 즐기지만 그중에서 뛰어난 몇몇은 선수가 되길 희망했다. 차 감독은 이들을 모아 엘리트 팀을 만들어 나갔다. 축구교실이 배출한 선수들의 성장과 더불어 신용산초·용강중·여의도고에 차례로 팀이 생겼다. 2003년에는 수원대에도 축구부를 만들었다. “학업을 병행한다. 욕설과 구타를 하지 않는다”는 게 차 감독의 원칙이었다. 그는 “우리 축구부에는 엘리트 선수 중에도 일 년에 한두 명은 시험을 쳐서 대학에 진학한다”고 말했다. 차 감독은 김동석(울산)·홍순학(수원)·정조국(서울) 등 차범근 축구교실을 통해 발굴한 대표급 선수보다 이들을 더 자랑스러워 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축구협회는 내년부터 축구 선수들의 수업 참가를 의무화하기로 결정했다. 차 감독은 “18년 전 내가 꾼 꿈이 이제 결실을 보는 것 같아 정말 기뻤다”며 “앞으로는 클럽 축구를 제도화해 발전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해준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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