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영’ 제대로 하라. 수신료 더 내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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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우리나라의 TV 수신료는 1981년 이래 줄곧 월 2500원에 머물러 있다. 한 해 3만원이다. 지난해 환율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영국 BBC(연 25만4100원), 일본 NHK(12만9700원), 독일 ARD·ZDF(25만8900원) 등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1만4000달러인데, TV 수신료는 국민소득 2370달러인 아프리카 나미비아 수준(월 2395원)”이라는 KBS 측 하소연에도 일리가 있다. 국가 기간방송인 KBS의 재원 중 수신료 비중이 겨우 38.3%밖에 되지 않으니, 공영방송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광고 유치에 목매느라 낯 뜨거운 시청률 경쟁을 벌여온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어려운 상황이 순전히 자업자득임을 누구보다 KBS 구성원들이 잘 알 것이다. 수없이 지적된 편파방송과 방만한 경영 문제다. KBS가 공영다운 공영방송이었다면 수신료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렇게 외면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상은커녕 거꾸로 수신료 거부운동이 벌어지곤 하지 않았는가. 정치적 중립과 공익성을 앞장서 실천했다면 누가 인상을 마다했겠는가.

그런 점에서 KBS가 내년 예산을 적자로 편성하면서 인건비를 묶고 경비도 줄이기로 결정한 것은 변화의 첫걸음으로 평가한다. 국장급 직책을 신설해 게이트키핑 기능을 강화한 조직 개편안도 편파·왜곡 보도를 막기 위한 시도로 이해한다. 우리는 KBS의 이런 노력이 TV 화면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볼 것이다.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공영방송법’도 KBS가 진정한 공영으로 거듭나는 것을 전제로 수신료 인상 등 재원확충을 보장하자는 취지 아닌가.

차제에 ‘무늬만 공영’인 MBC도 공영인지 민간 상업방송인지 선택해야 한다. 필요에 따라 공·민영을 왔다갔다 하는, 오로지 자사 이기주의에만 충실한 지금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MBC가 진정한 공영방송이 되겠다면 독일 공영방송들처럼 수신료를 나누는 방법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이제 공영방송은 공영다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