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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4대 강 정비사업, 대운하 우려를 불식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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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부는 4대 강 정비사업이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지방경제를 활성화하고,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고, 하천 환경과 수질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현 정부의 ‘운하병(病)’이 다시 도졌다” “대운하를 추진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며 의심한다. 이런 와중에 “수질개선 다해놓고 국민이 대운하를 연결하자고 하면 안 할 수 없다”라는 청와대 인사의 발언까지 나와 논란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지방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자연재해도 예방한다는 4대 강 하천 정비사업의 근본 취지를 반대할 것은 없지만,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은 국민들이 충분히 신뢰하지 못할 이유가 있음이 분명하다. 우선 총 14조원이 투입되고 내년에만 6500억원이나 투입한다는 사업에 굵직한 제목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해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하천을 준설하는 하도 정비, 홍수에 대비하는 하천변 저류지와 댐, 홍수조절지를 설치하고 제방을 보강하는 것이 주요 사업내용이다. 여기에는 물론 유역관리와 같은 진전된 하천관리 방식도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업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공교롭게도 이러한 사업내용이 대운하를 건설할 경우에도 필요한 사전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홍수는 주로 상류의 소하천이나 지방 지천에서 일어나는데, 범람이 심각하지 않은 4대 강 본류에 중점적으로 ‘수퍼 제방’을 쌓는 것도 의심을 사고 있다. 하상 준설에 5조원 이상의 재원을 투입하고 수질오염을 개선하려면 오염원 관리가 우선인데 저수지·댐 건설에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1000만 서울 시민의 상수원이 있는 한강에 배 다닐 것 아니면 검토할 필요가 없는 강변 취수까지 고려한다고 하고, 지난 정부에서 백지화된 영월댐(동강댐) 건설도 사업내용에 포함돼 있어 의심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반면 정부는 “하천 사업과 대운하 사업은 별개라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대운하 사업의 무리한 추진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는 비판 여론에 귀 기울이고 과정의 투명성을 통해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더욱이 “4대 강 정비사업이 대운하”라고 양심선언을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에 대한 중징계는 정부 입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며 대범하지도 못하다. 뭐니 뭐니 해도 4대 강 하천 정비가 정말 대운하의 사전 포석이 아니라 4대 강 살리기 사업이라면 대통령이 나서서 간단하게 해명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대운하에는 비판적인 국민들도 경기부양을 위한 투자에는 긍정적이다. 경기침체와 최근의 현 정부의 감세정책, 그리고 수도권 규제완화 등으로 더욱 어려워진 지방정부는 절박한 심정으로 중앙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으려고 하천 정비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비슷한 녹색경제를 주창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을 참고해볼 필요도 있다. 그는 친환경 경제기반이 될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일자리 500만 개 창출을 위해 향후 10년 동안 1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은 바 있다.

우리도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통합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기에 대운하 혹은 4대 강 정비사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한껏 창의력을 발휘해볼 필요가 있다. 기존에 진행 중이거나 사업이 준비된 사업을 확대하고 조기 집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같은 재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다른 방안도 찾아봐야 한다. 하천 정비처럼 특정한 꼬리표가 달려 있는 지원 대신에 도심 자연형 하천사업을 지원하거나 홍수 조절용 빗물 저장조를 만들면 어떨까. 돌보지 않아 망가진 지방 하천을 복원하거나 농촌 도랑을 살리는 등 지역에 맞는 보다 창의적인 경기부양 사업을 지원할 수는 없는 것일까. 교육과 서비스업 분야에서 고용도 창출하고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향상시키는 사업도 있을 것이다. 또 건설경기 부양을 하더라도 지역민들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주민 도서관, 운동장, 체육관을 건설하거나, 초등학교 건물의 개·보수 등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경기부양 사업은 없는 것일까. 여느 해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이번 세밑에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이나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윤제용 서울대 교수·화학생물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