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바다보며 뛰노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봄의 생명력을 한껏 빨아들인 나무들이 기지개를 켜고,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리며 집앞 텃밭 한켠에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이름모를 잡초들이 움터온다.

이제는 완연해진 봄기운을 드넓게 펼쳐진 깨끗한 동해의 시원한 바람이 마당앞으로 전해오면 도시에 살 때는 못 느꼈던,아니 느낄 수 없었던 그 무엇을 나는 오늘 아침 텃밭을 일구며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곳 강릉으로 이사온지 꼭 1년.주위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편리함을 뿌리치고 가족과 함께 자연이 살아숨쉬는 이곳 강릉으로 이사왔다.

눈만 뜨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푸른 동해바다를 볼 수 있고 여름에는 집앞 바다로 뛰어들어 온몸이 새카맣게 타도록 물놀이 하고 가을엔 온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는 오대산 단풍이 내 얼굴을 물들인다.

눈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내 아내를 질리게 만들 정도로 쌓인 눈을 헤치고 우리집 꼬마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눈싸움을 한다.

쌓인 빨랫감을 놓고 '애를 둘 키운다'고 투덜대는 아내의 싫지않은 얼굴이 때묻지 않은 하얀눈처럼 예뻐보이는 강릉의 겨울을 나는 사랑한다.

맑은 오대산 계곡물과 같은 청정한 마음을 갖고 있는 이곳 사람들과 매일 만나고 그들의 아픈 곳을 치유하는 일에 조그만 힘이 될 수 있는 내 직장생활에 만족한다.

나는 현란한 네온사인 불빛보다 산사의 아침처럼 조용한 이곳을 원했고,웅장하고 거대한 대형쇼핑센터의 편리함보다 정다운 웃음과 인정이 오가는 주문진 장날이 좋다.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인 아파트 놀이터보다 내가 어릴적 뛰놀던 강릉에서 나의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것이 좋다.

봄날 아침 태어난지 한달되는 강아지들과 함께 놀고 있는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내집앞 텃밭에 서있는 나의 입가에는 아지랑이 같은 미소가 떠오른다.

정범래〈강원도강릉시사천면방동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