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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패션 희생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90년대에 전세계 패션.의류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2차세계대전후 반세기동안 꾸준히 불던'차려입기 열풍'이 사그라들어 여유있는 중산층도 새옷을 잘 사지 않게 됐다.소재나 디자인의 아이디어도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이러한 불황을 타

개하기 위해 이탈리아 패션계가 고안해낸 것이'패션 희생자(fashion victim)'만들기였다.

아직 옷을 많이 입어보지 못한 젊은층.20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품목의 옷을 개발하고 광고 등으로 집중공략해'멋모르고 사들이는 희생자'를 만들어 돈을 버는 방식이다.

이러한 상술이 최근에는 일본.한국.중국 등 유럽 브랜드옷에 열광하는 동양을 겨냥하고 있다고 한다.실제로 96년 현재 한국에 수입된 의류 브랜드는 5백80여개,그중 약 80%가 이탈리아제다.95년 의류 총수입가는 10억1천4백만달러

로 전해보다 약 55% 늘었다.

양복을 오랫동안 입어온 구미인(歐美人)들이 만드는 기성복은 예외없이 브랜드의 컨셉트가 확실하다.그들이 소비대상으로 잡은 사람들의 생각과 라이프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90년대에 전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옷은 여성복에 남성용 비즈니스 슈트의 옷감과 재단법.바느질법을 두루 차용,출세한 전문직 여성의 이미지로 지적인 멋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편 발렌티노는 유한마담들이나 돈많은 남자들 주변의 꽃같은 여자들이 입는 옷을 만든다.잔니 베르사체는 미국 가수 마돈나가 즐겨 입는 현란하고 섹시한 옷을 내놓는다.

이러한 기본 컨셉트들은 유행에 따라 크고 작은 변화가 있지만 근간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구미에선'보통사람'들도 대부분 즐겨 입는 브랜드가 있다.자신의 환경,취향,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브랜드를 고르기 때문이다.한 예로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모으는 브랜드가'막스 앤드 스펜서'다.

최근에는 우리 백화점에서 세계적 브랜드의 수입옷을 판매대에 가득 쌓아 놓고 70,80%씩이나 할인해 파는 광경을 자주 본다.그 재고중 상당수가“한국에서 과연 누가 입을 수 있을까”싶은 옷들이다.수입옷의 정상가 판매비율이 평균 50%.그중엔 30% 미만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수입업체의 구매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브랜드의 이미지.디자인.사이즈.색상.시장성등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옷을 사들여 아까운 외화를 낭비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패션 희생국'을 자청하는 것같아 입맛이 쓰다. <박금옥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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