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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오바마 외교의 도전과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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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할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려고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칠 한 사람이 누군지는 분명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그는 오바마에게 골치 아픈 유산을 남겼다. 금융위기와 두 개의 전쟁, 테러와의 싸움, 그리고 중동과 다른 지역의 문제들이다. 오바마가 이런 급한 불들을 제대로 끄지 못한다면 그는 정치적 자본을 다 까먹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가 이런 문제들에만 매달린다면 부시의 정책 우선순위를 고스란히 물려받는 꼴이 될 것이다. 새 대통령은 과거를 잘 다루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를 재단해야 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오바마의 정책 의제에서 으뜸가는 과제는 경제위기다. 그는 경기를 부양하고, 보호무역주의의 압력을 피하는 동시에 세계 금융시스템을 복원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은 필수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G7(주요 7개국)에 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 경제국을 더한 G20 회의를 소집하는 유용한 전례를 남겼다.

우선순위의 둘째는 미국이 수행하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이 될 것이다. 오바마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 전투 여단들을 2010년 중반까지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시 행정부와 이라크 정부는 최근 미군을 2011년 말까지 철수하는 내용의 안보협정에 서명했다. 이 시간표가 효력을 발휘할지 여부는 현지 사정에 달려 있다.

파키스탄 무장단체의 도움을 받아 탈레반이 힘을 되찾은 아프가니스탄의 사정은 더 어려워 보인다. 오바마는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증원을 촉구했다. 그러나 더 많은 외국 군대의 주둔은 아프가니스탄 민족주의자들의 반발을 키울 것이다. 간단히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군대와 경찰에 대한 추가훈련과 아프가니스탄 내부 및 주변국과의 정치적 대화가 문제 해결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셋째 우선순위는 부시 대통령이 이름을 잘못 붙인 ‘테러와의 전 지구적 전쟁’이 될 것이다. 오바마 정부는 알카에다와의 투쟁을 계속해야 하지만 ‘전쟁’이란 수사(修辭)는 포기해야 한다. 하나의 전술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쟁이란 용어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전파하려는 담론을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영국은 더 이상 전쟁이란 말을 쓰지 않고 있다.

중동은 우선순위 목록의 넷째에 해당한다. 이란은 핵폭탄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의 우라늄을 농축했다. 그렇지만 유럽과 러시아·중국이 함께 외교적 노력에 나설 시간은 남아 있다.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이냐, 이란의 핵무기로 인한 걸프 지역의 불안정이냐는 탐탁지 않은 선택 사이에서 오바마는 부시의 발목을 잡아온 전제조건 없이 이란과 폭넓은 외교적 대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외교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이 요구된다. 중동과 관련한 우선순위의 앞자리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두 개의 국가로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 부시 행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놓이게 될 것이다. 또 막 시작된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대화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

아프리카·남미·아시아에서도 주요 현안이 발생할 것이고, 이 지역과의 관계는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다행히 이 지역과 관련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별다른 정치적 쟁점은 없었다. 북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일본·중국·인도 등 주요 국가와 좋은 관계를 남겨준 부시 정권의 아시아 정책은 괜찮은 편이다.

일방주의적 행동양식과 더불어 선제공격과 강압적 민주화로 대변되는 ‘부시 독트린’은 힘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 기초하고 있다. 미국이 가진 힘의 역설은 로마제국 이후 가장 강력한 국가가 단독으로 행동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소프트 파워 회복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결합해 냉전에서 승리를 거뒀던 스마트한 정책을 따를 필요가 있다. 강압보다는 부드러운 매력이 민주주의 확산에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 문제다.

오바마가 떠올리며 따라야 할 모범은 미국을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로 생각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역사적 지혜다. 쿠바 관타나모에 있는 테러용의자 수용소를 폐쇄하는 것은 그런 신호를 보내는 것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부시의 목소리는 미국의 제도를 제국주의적으로 강요하는 것처럼 들린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추구한 ‘다양성을 통한 세계의 안전’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를 통한 세계의 안전’이란 윌슨식 비전은 효용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적 현실론자’의 정책은 세계 질서의 장기적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19세기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국제 사회에서 가장 힘이 센 나라는 세계인과 모든 정부가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지구적 공공재(公共財)를 만들어 낼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개방된 국제 경제와 해양, 우주, 인터넷 등의 공유를 촉진하고 국제 분쟁이 심각해지기 전에 이를 중재하며 국제적인 규칙과 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겠다는 미국의 신호는 중요한 시작이 될 것이다.

지구적 공공재에 다시 한번 투자함으로써 미국은 스마트 파워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미국과 더불어 세계의 발전을 꾀하고 공공보건을 촉진하며 문화교류를 증진하는 한편 개방 경제를 유지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국제 기구들을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가 추진해야 할 정책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는 미국이 두려움보다 희망을 수출하는 본연의 업무로 복귀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조셉 나이(71)는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를 지냈으며 현재 하버드대 교수로 있다.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 『소프트 파워』(2004년), 『제국의 패러독스』(2002년) 등의 저서가 있다.

조셉 나이 미 하버드대 교수·전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정리=하현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