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속노조의 ‘일자리 나누기’ 결정 환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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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가 고용 안정을 위한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에 앞장설 뜻을 밝혔다. 내년 상반기 중 시작되는 ‘2009년도 단위 사업장 임단협’에서 사측에 ‘정규직 임금 인상 억제를 조건으로 한 비정규직 해고 최소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그동안 기득권 수호에 급급했던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동료의 일자리 유지를 위해 스스로 희생을 각오한 것은 진정으로 용기 있는 결정이다. 그것은 노동조합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다만 이왕에 결정한 고통 분담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사측과 협상에 나서기 바란다. 나라 경제가 살얼음판 위를 지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에서 쫓겨나는 근로자들이 쏟아지고 있는 판국에 내년 상반기까지는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사측도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여 상생을 위한 고통 분담에 당연히 동참해야 할 것이다. 노조 측에 회사의 상황을 투명하게 밝히고 임금 인상 억제, 근로시간 단축 등 구체적인 양보를 구해야 한다. 대신에 최소한의 구조조정을 약속해야 함은 물론이다.

금속노조에는 자동차·중공업·조선 등 수출 기여도가 높은 업종이 대거 몰려 있다. 거느린 조합원 수만도 14만7000여 명에 이르는 민주노총 산하 최대의 산별노조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산업계 전반에 여러모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치리라고 본다. 특히 그동안 강성 노동운동에 치중했던 자동차노조가 생산적인 노사 화합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면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기류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은 더 나아가 세계 최악의 노사관계를 기피해 한국을 떠났던 해외 자본을 다시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둔갑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생의 노사관계는 곧 생산성 증가로 이어진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위기에 처해 있는 이때, 우리 업체들이 노사 화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인다면 세계 시장 판도를 바꾸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 금속노조가 앞장선 고통 분담의 불씨가 산업계 전반에 들불처럼 번져 경제 회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