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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지도>46. 음악 프로듀서 (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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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미국에서는 보통 음반을 만드는데 세명의 중요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아티스트.A&R맨.프로듀서가 그들이다.아티스트는 가수 본인이고 A&R맨은'아티스트와 레퍼토리'의 준말로 음반 출시일이나 판매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음반사에도 존재한다.그러나'프로듀서'하면 국내엔'TV프로 연출가'로만 인식돼 있고'음악프로듀서'하면 대단히 생소하다.

구미에선 가수와 함께 음악방향을 고민하면서 결정적 답안을 내고 때론

연주까지 같이 하면서 음반의 깊이를 더하는,없어선 안될 역할로

친다.일본에서도 댄스음악에서 지난해 최고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고무로

데쓰야,미스터 칠드런등 인기절정의

모던록 밴드를 양산한 록계의 대부 고바야시 다케시등 두명이 연예인

인기순위 1,2위를 다툴 만큼 프로듀서의 사회적 인지도는 높다.

우리나라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작.편곡자가 아니라 본격적인

프로듀서로 대중에게 알려진 사람은 김창환으로 이는 90년대 들어와서의

일이다(그전엔 프로듀서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그는 90년초

신승훈을 발굴,1집부터 밀리 언셀러를 기록하며 프로듀서로 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어'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란 리메이크곡을 랩으로 선보인

김건모의 1집에서 그의 능력은 빛을 더한다.피아노를 치며 발라드를

부르던 김건모를 하루아침에 흑인댄스가수로 변신시켜 성공한

것.'핑계'의 히트로 1백만장 이상 팔린 김

건모 2집은 그의 역량이 절정에 달했다.뛰어난 가창력에 재미있는

가사,쉬운 멜로디가 조합된 그의 작품은 단연 대중음악계에서

돋보였다.'잘못된 만남'이 담긴 김건모 3집은 2백만장을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오르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신승훈의 1집이후 앨범들에서도 1백만장 이상씩 판매고를

올려 승승장구를 계속한다.김건모와 달리 신승훈은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는 싱어송 라이터인 만큼 노래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순수하게 프로듀서 작업만 해낸 김창환의 능력은 또다른 차원을 보여주었다.

남자 가수만 중점 발굴해오던 김창환이 처음 맡은 여자 가수가 바로

박미경이다.85년'민들레 홀씨되어'로 데뷔한 이후 뚜렷한 히트곡을 내지

못한 박미경은 김창환의 조련을 받으면서'이유같지 않은 이유''이브의

경고''아담의 심리'등 곡으로 댄스가수로 변신,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30세가 넘은 박미경이'여자 김건모'라 불리며 인기를 누리는 것과

여자가수도 음반을 팔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은 모두 김창환의

공로다.지난해 그는 클론의'꿍따리 샤바라'로 한번 더 이름을

알린다.백댄서였던 강원래.구준엽을 복제

인간의 뜻을 가진 클론이란 이름의 댄스 듀오로 가공시켜 단 한곡으로

스타덤에 올린 것이다.

이렇게 댄스음악계에서 김창환이 황금의 손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을 때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선 조동익이란 걸출한 프로듀서가 등장했다.한국

포크음악의 대부 조동진의 동생인 조동익은'우리노래 전시회''어떤

날'1,2집등 언더쪽에서 명반으

로 꼽는 작품들에서 뛰어난 작곡.연주능력을 보였고 베이시스트이자

편곡자로서도 80년대말부터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90년대 들어 조동익은 앨범 전체의 색깔을 책임지는 프로듀서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이 무렵 대표작이 김광석의 앨범들이다.그는 서정적인

어쿠스틱 사운드에 호소력 있는 김광석의 목소리를 섞은 주옥같은

편곡으로 김광석을 한국 포크계의 재목으로 띄워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는 이어 한동준의'너를 사랑해',안치환의 '내가 만일',여행스케치의

앨범등을 프로듀스하며 인기를 더해가는데 여기에는 80년대 팻 메스니등

퓨전재즈에 심취한 그의 서정적 색깔이 잘 드러나 있다.그러나 90년대

중반부터 모던록에 관심을 옮기면서 프로듀싱 방향이 일대 변화를 맞는다.'하루'가 담긴 장필순 4집은 기계음이 배제된 사운드에 모던록을 조심스레 시도한데 이어'델마와 루이스'가 실린 이한철 1집에서는 모던록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장필순 5집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건반없이 기타.베이스.드럼만으로

미국.일본에 전혀 뒤지지 않는 사운드를 완성,주목받고 있다.

쉴새없는 실험으로 귀추가 주목되는 조동익에 이어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젊은 프로듀서로 가수 김현철이 있다.

'내게로'가 담긴 장혜진의 앨범을 시작으로'난 행복해'의 이소라 앨범을

만들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가사와 성숙된 멜로디로 중.고생 대신

성인팬을 확보함으로써 이소라는 여가수의 대표로 떠오르고

기성세대들도 충분히 앨범구매층이 될 수 있다는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

바로 김현철의 프로듀싱 능력과 이소라의 매력이 잘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이밖에'환생'의 윤종신과'가족'의 이승환 앨범 공동프로듀서로

주목받고 있는 유희열,변진섭의 작.편곡자로 시작해 조관우 앨범을

프로듀스한 하광훈,'쇼'의 김원준,'날 위한 이별'의 김혜림,'하늘만 허락한 사랑'의 엄정화등 인기가수를 양산한 김형석등이 최근 떠오르는 프로듀서들이다.

한편 터보의'러브이즈',쿨의'운명',영턱스클럽의'정',이승철의'오늘도

난', 김완선의'탤런트'등을 작.편곡한 운일상,룰라의'날개잃은

천사',김건모의'스피드'를 작곡한

최준영,터보의'트위스트킹',성진우의'포기하지마'를 작곡한 주영훈

등 작.편곡자를 거쳐 프로듀스 능력까지 선보이고 있는 전천후

아티스트도 많다.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프로듀서가 작.편곡자의

역할까지 맡는 것은 아니다.우리나라도 프로듀서 제도가 정착되려면

작.편곡자와는 별개의 전문 프로듀서 양성이 시급하다.

순수 프로듀서로 이름을 떨치는 사람으로는 이수만,가수

이승환.신철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주로 음반기획사 대표로 A&R맨

역할도 하고 있는게 공통점이다.이수만은'흐린 기억속의 그대'의

현진영에서 시작,'그대의 향기'(유영진)를

히트시킨데 이어 최근 H.O.T를 최고 인기그룹으로 끌어올리면서 전문

프로듀서로 인정받았다.이승환은'마법의 성'(더 클래식)과'엉뚱한

상상'(지누)을 프로듀스해 순수 프로듀서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DJ출신 신철은 디제이 덕과 구

피등 댄스그룹을 만들어 전문프로듀서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세계5위 수준인 우리나라 대중음악 시장은 세계가 주목하고 있고

정보통신 발달로 구미와 일본의 음악을 얼마든지 동시간대에 들을 수

있는 현실이다.무분별하게 수입되는 구미음악과 언젠가 개방될

일본음악에 대응력을 가지려면 능력있는 프로

듀서들이 빨리 대량 배출돼 댄스같은 일부 장르에 집중된 가요계를

변혁시켜야 할 것이다. 장석진〈뮤지션겸 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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