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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암행반이 만난 星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공직 기강을 점검하기 위한 암행반이 전국을 순회했다.먼저 순찰 임무중에 고스톱을 친 경찰관들과 만났다.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소?”

“보시다시피 고스톱을 치고 있습니다.벌써 오래전에 국민적 오락으로 자리잡은 고스톱을 우리라고 외면할 수 있습니까.”

가는 곳마다 대개 이런 식의 문답이 오갔는데 몇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민원인이 서류를 들고 왔다가 허탕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요? 아,그럼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는데 어떡합니까.누가 대신 해줘야 한다고요? 다른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압니까.요즘같은 전문화 시대에선 담당자만이 압니다.”

“산불비상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 왜 골프를 쳤냐고요? 참 답답한 양반,아 책상머리에서 산불이 발견됩니까.산 중턱의 툭 터진 공간,골프장이야말로 산불을 조기 발견하는데 최적의 장소 아닙니까.”

“근무시간에 왜 컴퓨터로 테트리스 게임을 즐겼냐고요? 조각난 벽돌을 시간에 쫓기며 요리조리 꿰맞추는 긴박감은 두뇌회전에 아주 좋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컴퓨터 시대에선 일과 놀이가 같이 간다는 사실을 아셔야지요.”

암행반이 어느 곳에 당도하니까 파출소 경찰관들이 지방 경찰청장을 비난하는 유인물을 작성하고 있었다.

“경력 20년이 넘는 경사급 경찰관을 신임 순경들이나 하는 순찰 근무에 나서라고 한 것은 너무 하다.즉각 철회하라.”

암행반은 보고 들은 바를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선생에게 보고하고 말씀을 구했다.

성호선생은 당쟁에 진저리가 난 나머지 초야에 묻혀 학문에 몰두한 실학자(實學者)이시다.구국의 길을 묻는데 시공(時空)의 다름이 어찌 문제되랴.현자(賢者)가 말했다.

“사람의 몸은 하나의 천지입니다.사람의 병과 나라의 병은 같습니다.팔다리가 아픈 것은 지(支)라고 합니다.그러나 여러 신하들의 방자함이 없으면 지가 일어나지 않습니다.가슴 속의 중병은 격(膈)이라고 합니다.그러나 하부의 사정이 상부

에 통하면 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염통 밑이 아픈 것이 맹(盲)입니다.그러나 상부에서 선창하고 하부에서 호응하면 맹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속이 타는 것은 번(煩)이라고 합니다.그러나 법령을 받들어 행하면 번이 일어나지 않습니다.숨을 헐떡이는 것이 천(喘)입니다.그러나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원망함이 없게 하면 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몸이 마비되는 것은 비(痺).풍(風)

입니다.그러나 어진 이로 하여금 숨는 일이 없게 하면 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또 백성으로 하여금 원망하고 비방하는 것이 없게 하면 풍이 일어나지 않습니다.”[민족문화추진회편 '성호사설(星湖僿說)' 1백65쪽]

암행반은 내친 김에 더 물었다.

“나라의 병을 고치는 분은 어떤 분이라야 합니까.”

“퇴계(退溪)선생같은 고매한 분이 있으면 됩니다.퇴계는 옛 사람들은 가까운 아들.사위.아우.조카를 엄격히 잘 가르쳤는데 자신은 자신의 박덕(薄德) 때문에 저희들로 하여금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도록 만들지 못한 것을 한탄했다고

합니다.그렇지만 그건 다 옛날 일이고 지금은 한국병(韓國病)을 치료하는 명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김성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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