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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자본확충펀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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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업과 가계에 돈이 돌아가려면 은행의 금고가 넉넉해야 한다. 그런데 돈줄을 쥔 은행이 시름시름 앓다 보니 한은이 돈을 풀고, 기준금리를 대폭 내려도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와 한은이 꺼내든 카드가 ‘은행 자본확충 펀드’다. 은행이 제 힘으로 자본을 늘리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펀드를 만들어 돕겠다는 것이다.

◆펀드 왜 만드나=은행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다. 9월 말 현재 국내 은행의 BIS 비율은 평균 10.86%다. 8% 미만이면 부실은행으로 분류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12.32%)보다 크게 떨어졌고, 지금도 계속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9월 이후 국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가 본격화됐다. 이 때문에 BIS 비율은 앞으로도 더 떨어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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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건강 상태가 나빠지다 보니 대통령이 아무리 대출을 늘리라고 해도 은행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저항한 게 아니라 체력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은이 은행에 돈을 풀어도 기업으로 흘러들지 못했다.

물론 은행들도 나름대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BIS 비율을 높이기 위해 후순위채권과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권)을 발행하고, 증자까지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러나 은행들은 기본자본의 확충 목표액인 11조원 중에서 지금까지 3조원을 마련하는 데 그쳤다. 스스로 자본을 늘리는 데 한계에 부닥친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한은과 산업은행이 상당액을 대 주는 자본확충 펀드다. 도저히 제 힘으로 자본을 늘릴 수 없는 은행은 펀드에 각종 채권과 주식을 팔아 자본금을 늘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본부장은 “돈이 돌지 않는 신용경색을 풀고, 은행 중심의 구조조정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선 일단 은행이 튼튼해야 한다”며 “펀드를 통한 자본확충 지원은 현 상태에선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나=한은이 대출 형태로 지원하는 10조원으로 펀드가 은행에서 우선주나 후순위채 등을 사들인다. 정부는 이를 묶어 새로운 증권으로 만든 다음, 일반투자자로부터 8조원, 산업은행으로부터 2조원의 자금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투자자들이 채권을 쉽게 살 수 있도록 보증을 붙일 예정이다.

계획대로 증권이 다 소화되면 최대 20조원이 은행의 자본확충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셈이다. 한은은 내년 1월중 금융통화위원회에 10조원 대출 방안을 부의해 승인을 얻어낼 계획이다. 한은이 이런 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1997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한은은 한은법에 따라 ‘심각한 통화신용의 수축기’에만 펀드와 같은 영리기업에 돈을 대출할 수 있다. 따라서 한은이 최근 자금시장 상황을 ‘심각한 통화신용의 수축기’로 판단했다는 의미가 된다.

금융위는 펀드 자금 20조원이 모두 은행에 투입되면 BIS 비율이 전체적으로 2.6%포인트 추가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은행이 건전성에서만큼은 우량한 축에 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앞으로 경기침체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펀드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을지 여부는 은행이 알아서 결정한다. 정부의 외채 지급보증도 받지 않겠다고 한 한국씨티·SC제일은행 등은 자금지원을 신청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지원을 받은 은행은 ▶비용 절감 ▶중소기업과 서민 지원 ▶불필요한 자산 확대 자제 등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맺어야 한다. 구조조정을 좀 더 강하게 해야 하는 부담을 지는 것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펀드가 자금을 지원하면 BIS 비율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지만 정부의 경영 간섭이 많아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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