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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융합 선두 홍콩 과기대 17년 만에 세계 39위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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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향후 5년 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한다.”

홍콩 과학기술대학(HKUST·과기대)의 폴 칭우추(朱經武) 총장이 요즘 교수·학생에게 입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말이다. 그의 해법은 ‘융합(convergence)과 창조성(creativity)’. 학문 융합을 통해 창조성이 길러진다는 얘기다.

과기대는 1991년 홍콩 정부가 동북아 최고 연구중심대학을 목표로 세웠다. 설립된 지 17년밖에 안 됐지만 이미 세계 40대 명문대 중 하나가 됐다. 올해 영국 언론 더 타임스의 대학종합평가에서 39위였다. 이공대만의 평가에선 24위였다. 500여 교수의 1인당 국제 과학기술논문색인(SCI) 피인용 건수는 연간 3.1건으로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비결은 과감한 학문 융합에 있었다. 우리 대학들의 ‘학문 통섭’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지만, 이 대학은 이미 학문 융합의 실용화에 나서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학 역시 세계 흐름에선 일부에 불과하다.

◆“창조적 아이디어 나와”=이 대학 3학년생 찬 윙 샨의 꿈은 세계적인 전자공학도가 되는 것인데, 전자공학·경영학을 동시 전공하고 있다. 그는 “과학적인 공학과 인간적 논리·합리가 지배하는 경영학을 동시에 배우면 창조적 아이디어를 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과기대가 2002년 ‘경영·기술의 융합’을 내걸고 시작한 기술·경영 복수전공 프로그램 재학생이다. 이 프로그램은 경영학에 컴퓨터·기계 등 9개 공대 학과를 융합시켰다. 홍콩 대학은 3년 과정이지만, 프로그램은 4년이다. 이수학점(137~155학점)도 일반 대학보다 37~55%가 많다. 찬은 “학과 과목 모두 석·박사 코스 수준인 데다 한 과목이라도 이수하지 못하면 낙제하기 때문에 입학 후 하루 5시간 이상 잠 자지 못했다”고 밝혔다.

교육은 항상 현장 중심이다. 학생들은 매년 국내외 기업의 프로젝트에 참가해야 한다. 올여름에는 일본 NTT도코모의 ‘기술 상업화’, 지난해는 미국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중국 트럭물류 시스템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 프로그램 총책임자인 천즈밍(陳志明·화학공학) 교수는 “정보화·지식기반 사회에선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만으로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영·기술을 모두 아는 인재를 키우자는 취지”라며 “학문 융합에서 창조와 경쟁력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 졸업생들은 70%가 금융계, 30%가 기술이나 마케팅 분야에 진출하는데 “뭘 시켜도 잘하니, 다른 경영대 졸업생보다 두 배 이상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월급 두 배 이상 받아”=이 대학의 나노·환경·바이오 분야 석·박사 과정 학생들은 학과에 경계가 없다. 나노 분야의 경우 자연대의 물리·화학·생물학과와 공대의 기계·전자·토목(환경)과가 융합해 ‘나노 사이언스 테크 프로그램’으로 수업한다. 나노 분야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한국인 김장교 공대 부학장은 “대학원생들은 졸업 때까지 국제 학술지에 평균 5~6편의 논문을 쓴다”며 “학과 융합이 연구 실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학은 개교 때부터 실험실도 통합했다. 중앙실험실에 대기·나노 등 9개 학과 핵심 실험시설을 모은 것이다. 김 부학장은 “실험시설이 따로 있으면 학과 이기주의에 빠져 실험 결과가 공유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기술이 다양한 방면에서 너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융합 실험과 결과 공유’ 없이는 최고의 연구실적을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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