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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자율형 사립고 성공의 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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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는 그 한가운데서 곤히 잠자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또 한 번 경악한다. 어린 왕자와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서 모차르트를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모차르트가 가난에 의해 살해되고 부모처럼 진흙덩이로 변하고 말 운명에 처해 있다는 사실에 고뇌한다. 『인간의 대지』의 마지막 부문이다.

생텍쥐페리가 글을 썼던 대공황 시절과 산업국가의 현재 상황 간에는 천양지차가 있다. 경제발전의 덕이기도 하지만 대공황을 겪으면서 선진국의 자유주의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이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 여건을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는 적극적 자유주의가 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세금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저소득층에 분배해 주거나, 직접 필수 소비재를 생산, 공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소득세율을 너무 높이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쓰는 방법이 가격 제한이다. 필수 소비재의 시장가격을 제한하여 저소득층의 접근성을 높이고 발생하는 생산자의 적자만 정부가 보조금으로 메워주는 방식이다. 우리의 의료보험제도, 그리고 고등학교 교육제도도 이 틀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제한가격이 너무 낮거나 보조금이 불충분하면 생산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공급의 양이 부족해지거나 질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력과 교육기술을 겸비한 교사는 희소한 자원이다. 이를 낮은 가격에 제공할 용의가 있는 교사는 더욱 희소하다. 수요자 쪽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공교육이 제공하는 교육환경은 시민을 키워내는 데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모차르트를 키워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더 좋은 교육을 위해서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부모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없다.

부모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 문제를 우회한다. 사교육과 유학이다. 큰 희생이 따른다. 학생들은 주간, 야간, 주말 가리지 않고 진행되는 천리마 행군을 하거나, 서툰 영어로 인종차별의 벽을 헤쳐나가는 유년의 고행을 이겨내야 한다.

부모들은 교육비로 등골이 휘고 씁쓸한 중년의 고독을 감내한다. 우회의 대열에 참여할 수 없는 부모들은 좌절한다. 있는 집 자식들이 좋은 대학 자리 다 차지할까봐 두렵다. 그래서 대학은 눈을 반쯤 감고 학생들을 뽑는다. 학교들의 수준 차이가 엄청나지만 이들의 내신성적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학생도 부모도 대학도 모두 불만이다.

정부는 이 틀을 깨보려 하고 있다. 1년 학비가 1000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자율형 사립고가 한 방편이다. 여유있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해 저문 거리에서는 그런 일이 대량으로 발생하고 있다. 몇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이를 낮에도 용인하는 것을 반대할 좋은 명분이 없다. 첫째는 충분한 비율의 저소득층 자녀들이 장학금을 받고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차르트의 살해를 막기 위함이다. 둘째는 일반 고교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심리적 박탈감은 몰라도 교사의 이동이나 기부금 감소 등으로 인한 실질적 피해는 막아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과연 고급 사립고의 설립으로 사교육이 줄어들 것인가? 특목고에서도, 그리고 심지어 등록금이 3000만원에 육박하고 전 과목을 원어민이 강의하는 외국인학교에서도 과외는 그칠 줄 모른다. 이에 더해 특수 사립고 입학을 위한 중학생들의 과외 확산은 어쩔 것인가. 그래서 필자는 세 번째 조건을 추가하고 싶다.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 야간과 주말의 중·고교생 과외를 금지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위험스러운 생각을 하는 것은 다른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천리마 행군은 계속되고 사교육비, 공교육비 모두 증가할 것 같아 너무 걱정이 되기도 하고.

송의영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