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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문화기행>콧대높은 화가 쿠르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렘브란트를 만난 뒤에 쿠르베(1819~77)를 보니 좀 쉬는 기분이 들었다.쿠르베가 만만해서가 아니라 밝은 색채와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해서였다.'바닷가'(1865년)라는 제목이 붙여진 풍경화는 그냥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그

림이다.제목이 없으면 주제가 무엇인지 짐작하기 힘든,서명을 보지 않으면 화가를 휘슬러나 모네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치 단순하게 색채로만 말하는 그림이다.

동시대의 낭만적인 풍경화와 달리 여기엔 실제 관찰자의 눈에 보인 풍경 그 자체 이외엔 아무 것도 없다.사람도 없고,심지어 그 흔한 갈매기 한 마리조차 없이 완전히 비워진 해변이 어쩐지 쓸쓸한 느낌을 준다.

꾸밈없이 평범한 구도,야외의 빛과 그림자,대기의 실감,맞닿은 경계가 부분적으로 희미해져 서로 넘나들 듯 파란색의 모노톤으로 칠해진 화면이 심상치 않다.곧바로 말하면 나는 여기서 인상파의 도래를 예감했다.물론 아직은 인상파처럼 그빛이 눈부시게 나른한 맛은 없지만.풍경화는 쿠르베의 주력 품목이 아니었다.하지만 나는 그가 이 방면으로 계속 나갔으면 사실주의뿐 아니라 인상파의 선구자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거만한 화가였을 것이다.서양미술의 오랜 전통을 깨고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을 한 점도 그리지 않았던 쿠르베.그는 고대의 신들을 모두 추방한 자리에 당대의 평범한 일상을 들여앉히고,거의 사진에 가까운 정직함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화폭에 담았다.“나에게 신을 보여달라.그러면 나는 신을 그리겠다”는 그의 말은 후일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명제가 됐다.

수백년간 지속된 미술세계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자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고투했던 그는 센세이셔널한 전시회와 언행으로 유명했다.그에 대해선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전해진다.그의 높은 콧대를 비꼬던 어느 정부 고관에게 그는 이렇게 응수

했다고 한다.“이제야 그걸 알았습니까? 참으로 놀랍군요.각하.나는 프랑스에서 가장 거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술에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혁명아였다.사회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쿠르베는 1871년 파리코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루브르 박물관의 책임관리자로 활동하다 코뮌이 진압된 뒤 나폴레옹 동상을 파괴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다.몇개월 뒤 그는 병보석으로 풀려나지만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전 재산이 몰수되고 막대한 배상금이 부과되자 스위스로 탈출한다.망명지에서 생애의 마지막 4년을 쓸쓸하게 보내다 객사했다고 한다.

파란 하늘에 성에 낀 듯 희뿌옇게 엉킨 구름과 그 위에 어렴풋이 암시된 검은 먹구름에서 화가의 흐린 마음의 속내를 읽었다면 나의 지나친 아전인수인가.관심을 끄는 그림의 배후를 추적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작품의 제작연대를 확인하곤 곧 실망했다.1865년.난 이 작품이 파리코뮌 이후에 화가가 국외로 망명한 뒤 그려진 게 아닌가하고 은근히 기대했던 것이다.스위스엔 바다가 없는데도 말이다.내 고정관념도 만만치 않은가 보다. 최영미〈시인〉

*최영미씨의 유럽문화기행은 이번호로 끝냅니다.그간 애정을 보여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최영미씨는 이번 연재물과 미발표 글을 묶어 곧 단행본으로 펴낼 예정입니다.

<사진설명>

쿠르베의 작품'바닷가'(18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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