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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 & 상영작] 男과 女 사이, 따스한 기운이 흐를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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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면

레이디스 앤 젠틀맨 ★★★(만점 ★5개)

감독 : 클로드 를르슈
주연 : 제레미 아이언스.파트리샤 카스
등급 : 15세 이상 장르 : 드라마.로맨스
홈페이지 : (www.andnowladiesandgentlemen.com)
20자평 : '남과 여'의 감성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추억같은 영화.

오랜만에 '어른들의 영화'가 나왔다. 그것도 소싯적 옆구리에 시집을 끼고 다녔을 문학소년.소녀 출신들에게 호소력 있을 영화다. "삶은 잠이고, 사랑은 꿈이다"같은 범상치 않은 대사를 아무나 이해할 수 없지 않은가.

'남과 여'로 28세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클로드 를르슈의 2002년작 '레이디스 앤 젠틀맨'. 이 영화에는 나이를 먹어도 멋있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프랑스의 디바'인 샹송 가수 파트리샤 카스가 주연으로 등장한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부분 기억 상실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는 것. 그들은 병을 계기로 그동안의 인생이 허무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인물들이다. 도둑이었던 발렌틴(제레미 아이언스)은 밤마다 자신이 훔쳤던 물건을 되돌려 주는 꿈을 꾸다 요트를 타고 세계일주를 떠나고, 재즈가수 제인(파트리샤 카스)은 자신의 애인이 동료 가수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알고 사랑에 대한 믿음을 잃게 돼 모로코로 향한다.

클로드 를르슈는'남과 여'에서 상처한 카레이서와 남편의 환영을 안고 사는 영화 스크립터의 사랑을 화면을 교차해 가며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발렌틴과 제인의 삶이 모로코라는 생소한 장소에서 부딪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영화 제목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란 발렌틴이 세계 일주를 위해 타고 떠나는 요트의 이름. 그런데 그 제목은 영화 '남과 여'를 연상시킨다. 지난 30여년간 클로드 를르슈는 남자와 여자의 문제에만 천착해 있었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남과 여는 서로에게 마지막 목표는 될 수 없어도 심각한 마음의 병을 치유해줄 따스한 손이 돼줄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이 영화 전편에 흐른다.

영화 중간 이탈리아 갑부 부인의 보석 절도 사건같은 군더더기 이야기가 끼어들기는 하지만,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긴 성숙한 어른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데 클로드 를르슈 같은 전문가도 없는 듯하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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