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파고드는 종말론의 유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92호 15면

인생이 곤두박질치듯 무너질 때 사람들은 자포자기, 근거 없는 낙관론, 우왕좌왕, 책임 회피 등의 증상을 보인다. 극단적으로는 “내가 망하면 이 세상도 망할 것이다(혹은 망해야 한다)”는 자아범람의 망상(Paranoia of ego-inflation)에 빠지기도 한다. ‘묻지 마 살인’이나 종말론은 나와 외부를 구별하지 못하는 자아경계(Ego boundary)가 허물어졌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나미의 마음 엿보기

최근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다, 마야 달력에 의한 예측이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이다 하면서 해일·지진·경제혼란·핵확산 등을 세상이 곧 망할 징조라고 믿는 이가 많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런 유의 재해는 늘 있어 왔는데, 고통스러운 사회적 정황을 자연현상에 투사(Projection)한 결과 무심한 변화에서 부정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종말론에 빠져 혼자만 망상환자가 되면 그나마 다행인데, 스스로 미륵보살이라 했던 궁예, 청나라의 백련교와 의화단, 미국의 찰스 맨슨과 짐 존스, 일본의 옴 진리교, 러시아의 최후의 심판일(doomsday)교, 오대양 사건처럼 끔찍하고 잔인한 말로를 보여 주거나 최근 우리나라의 JMS, 인도의 오쇼 라즈니쉬처럼 성폭력을 자행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컬트 집단일수록 편견을 갖고 있는 주류 종교단체나 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단이라고 간주되었던 가톨릭의 초기 교부(敎父)들 중에는 후세에 그 평가가 달라졌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병적인 종교집단의 망상을 논리적으로 깨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신도 중에는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니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하기도 힘들다. 교주들은 쉬운 단어와 논리를 반복적으로 말해 사람을 세뇌하기 때문에 집회에 자주 참석하게 되면 마치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교주의 생각에 동화된다. 교주들은 뛰어난 화술과 용모, 따뜻한 마음 씀씀이와 강력한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어 마음 붙일 곳 없는 이들은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과 고향을 찾은 듯한 기분에 빠지고, 기존 사회와는 마침내 완전히 단절된다.

인도의 테러와 관련되었다는 라시카르-에-토이바(LeT)나 9·11 사건을 일으킨 지하드 역시 정통 무슬림은 일종의 이단적 컬트라고 간주하고 히틀러·무솔리니나 김일성 역시 일종의 교주란 평을 받기도 한다. 즉각적 고용과 경제회생, 제3제국 혹은 김일성 국가의 장밋빛 미래, 민족에 대한 비정상적 자부심 등을 내세웠으니까. 시절이 흉흉할수록 다방면에서 이런 교주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저개발 국가에서 권력자들이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게 되는 이치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에 다가선 한국이지만, 여전히 무의식에는 저개발국가의 추억과 습관이 남아 있으니 누군가 교주가 되어 광기 어린 질주를 하면 우리 사회는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은 혼란과 폭력적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힘세고 가진 건 많지만 상식과 양심은 부족한 이들의 엉뚱한 궤변에 휩싸이지 않도록 눈 크게 뜨고 정신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할 것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