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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cover story] 고생쇼?… 당 사무처 직원들만 고생시킨 건 아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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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일본 대사는 한나라당 천막 당사를 방문해 박근혜 당 대표에게서 차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그 찻잔은 일반 찻잔이 아니라 종이컵이었다. 다카노 대사가 종이컵을 한참 살펴보더니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종이컵에 찍힌 그림이 한나라당 로고입니까." 그건 그냥 '스마일 마크'였다.

한나라당이 지난 3월 24일 서울 여의도 옛 중소기업 상설전시장 공터의 천막 당사로 옮긴 뒤 생긴 해프닝 중 하나다. 당시 당사 이전은 총선을 앞둔 승부수의 하나였다. 일명'차떼기 불법 자금'과 대통령 탄핵 등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자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전당대회 다음날 박근혜 대표가 직접 옛 당사에서 당 현판을 떼어낸 뒤 여의도공원을 가로질러 천막 당사까지 걸어와 현판식을 열었다.

그렇게 시작된 천막 당사 생활도 벌써 두달여째.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이곳에서 권위주의나 '겉멋'에 얽매이거나 유권자를 무시하는 과오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름기'는 많이 빠졌다. 최소한 사무실의 인테리어나 크기가 일의 성공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배운 듯하다. 일본 대사에게 의전에 맞지 않게 종이컵으로 대접한 것도 격식과 허식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등 돌린 민심을 되찾아 오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그래도 천막 당사 생활은 여전히 적응하기 힘들어 보인다. 사실 천막 당사 초창기엔 물과 전기도 없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심지어 상수도관이 연결돼 있지 않아 인근 소방서에 'SOS'를 치기도 했다. 이후 대형 물탱크를 설치하고 먼 곳에서 호스를 연결해 물을 채우는 식으로 물관리를 하고 있다.

요즘은 기온이 올라가면서 일종의 '온실효과(직원들은 '찜질방 효과'라고 부른다)'에 시달리고 있다. 비닐 하우스처럼 사무실 기온이 급상승해 생기는 이런저런 불편함이다. 급기야 직원들이 천막 당사 지붕 위로 내리쬐는 복사열을 막기 위해 스티로폼을 올려 놨으나 별 소용이 없단다. 가장 큰 문제는 사정없이 날아 들어오는 먼지다. 조금만 앉아 있어도 책상과 컴퓨터 주변이 탄광처럼 시커메진다. 그래서 대다수 직원은 기침과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일부 직원은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요즘에도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고역을 치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다음달 중순이면 서울 염창동에 새 당사를 마련해 이사간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이사가도 '천막 정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이전처럼 사무실 한 층 전부를 당 대표 사무실로 꾸미거나 당직자들에게 자주 쓰지도 않을 방을 내주는 그런 행태 말이다. 문제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다. 사실 이들은 천막 당사에 별로 발을 들이지 않았다. 한 주변 식당가 주인은 "당사를 옮겼어도 의원들은 다들 강남으로 가는지 잘 안 보인다"고 시큰둥해 한다. 두달여간의 텐트 생활에서 얻은'천막 정신'을 당 사무처 직원들만 체득한 것인지, 소속 의원들도 익힌 것인지는 앞으로 새 당사에서 벌일 정치활동을 지켜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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