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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열며>줌과 받음의 不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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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종교단체에서는 얼마전 탁발행사를 가졌다.수행자들이 거리에서 동냥을 한 것이다.모아진 금전은 중국이나 북한동포와 같이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족들을 위해 쓰여진다는 취지였다.

석가 당시 수제자인 가섭이 탁발에 나섰다.세상에는 많이 가진 이와 적게 가진 이가 있게 마련이다.가섭은 부잣집만 골라 동냥을 했다.빈궁한 이가 보시(布施)를 하면 더욱 가난해질 수가 있고,부유한 이가 보시를 하게 해야 세상의 물질

소유균형을 맞추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석가는 제자의 판단이 크게 잘못됐다고 꾸짖었다.부자만 보시하고 빈자가 보시하지 않으면 부자만 공덕(功德)을 지을 수 있다.부자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고,빈자는 점점 더 오그라들게 된다.

탁발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사람들이 복을 지을 기회를 주는 의식이다.나와 남을 같이 생각하게 한다.그러므로 골고루 찾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이때부터 수행자들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일곱집 이상을 찾아다니면서 탁발하게 됐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 한 수행승이 산길을 가게 됐다.헐벗은 거지가 바위 틈새에서 떠는 것을 본다.그 수행승은 순간적으로 마음속에서 갈등을 겪는다.그냥 지나치자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자기의 누비 두루마기를 벗어 주자니 자신이 추

위를 이기지 못할 것 같다.망설이던 수행승은 크게 마음먹고 옷을 벗어주기로 결단을 내린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거지는 수행승의 옷을 받고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말은 커녕 기색마저 보이지 않는다.거지의 무지를 불쌍히 여긴 수행승은 자상하게 인사법을 타이른다.그러자 거지는 수행승을 큰 소리로 나무란다.복을 지을

기회를 준 자기에게 감사하지는 못할지언정,오히려 인사를 받으려고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수행승은 그 자리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자세히 보려고 하니 이미 그 자리에 거지는 없다.자신이 벗어준 옷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불교에서는 연꽃의 특징을 이용해 줌과 받음 또는 출발점과 도달점이 둘이 아님을 깨우치려고 한다.연꽃은 진흙으로부터 영양분의 원문을 받아 연꽃이라는 중생들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번역해낸다.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연꽃의 원문은 진흙

이다.번역을 좋아한다면 왜 원문은 싫어하는가.연꽃을 좋아할 수 있다면 왜 진흙은 좋아할 수 없는가.

세상은 진흙이기도 하고 연꽃이기도 하다.중생이 보면 진흙이요,부처가 보면 연꽃이다.더럽게 보이는 진흙은 출발점이요,깨끗하게 보이는 연꽃은 도달점이다.세상은 진흙의 출발점으로부터 연꽃의 도착점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어떤 의미에서든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우리 모두의 인생 여정도 마찬가지다.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씨앗은 출발점인 진흙은 외면하고,오직 최후 도달점인 연꽃에만 눈독을 들이는 데 있다.삶을 제대로 맛보려면 진흙이라는 출발점에서부터 연꽃이라는

도달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부산행 또는 목포행 열차표를 구입했을 때부터 도착지에서 누리게 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스키장의 리프트에 걸터앉을 때부터 눈 위를 미끄러져 내리는 스릴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주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출세하려는 이는 누군가를'기쁘게 해주려고'하거나 최소한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보여 주려고'한다.팁을 받는 업소의 종업원도 손님이 감사 표시를 할 수 있는'기회를 준다'.주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주려고 한다.설사 바로 주지 않더라도 다른 때에 주기 위해 받는다.우리는 줄 수밖에 없다.중요한 것은 얼마나 멋있고 복되게 주느냐는데 있다.작은 보시의 출발점에서 큰 성취(成就)의 도달점을 누리느냐는 데 있다.

釋之鳴<청계사 주지〉<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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