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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내년 경제성장률 2%” … 외환위기 이후 최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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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상수지는 220억 달러 흑자 전망
4분기 성장률도 ‘ - 1.6%’로 예측

한국은행이 내년 우리 경제 성장률을 2%로 전망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6.9%) 이후 가장 낮다. 한은은 또 올 4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 1.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분기 성장률이 뒷걸음질친 것은 2003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12일 발표한 ‘2009년 경제전망’의 내용이다.

한은은 내년 상반기 성장률이 전년 대비 0.6%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하반기 들어 다소 회복돼 ‘상저하고(上低下高)’ 형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올 7월에 발표한 4.6%에서 3.7%로 끌어내렸다.


한은은 내년 세계 경기침체로 수출이 크게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증가율이 올해 14.7%에서 내년에는 -6.1%로 뒷걸음질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값이 떨어지면서 수입이 더 큰 폭(-12.9%)으로 줄어 경상수지는 22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성장률이 쪼그라들면 일자리가 늘어나기 어렵다. 한은은 내년 취업자 증가 수가 4만 명에 그쳐 올해보다 10만 명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내년 상반기에는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4만 명 줄어들면서 고용시장 악화가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조민근 기자


재정 투입 속도 높이고
‘돈맥경화’ 빨리 고쳐야

뉴스분석 ‘2%’

내년 성장률 전망치에는 한국은행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4%에 비해선 비관적이지만, 해외 주요 투자은행이 내놓은 평균 1.2%보다는 낙관적이다.

애초 이번 주 초로 예정됐던 발표를 한 차례 연기할 때부터 시장에선 구구한 예측이 많았다. 전날 금융통화위원회가 유례없이 큰 폭의 금리인하를 단행한 것도 낮은 전망치와 관계가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3%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건 예견됐다. 시장의 관심은 1%대까지 떨어지느냐 여부였다. 결국 한은은 2%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숫자를 내놨다. 명목상 2%대이지만 사실상 1%대에 가깝다.

이날 설명회에서 김재천 한은 조사국장도 ‘2% 내외’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2% 전망은 세계경제 성장률 1.9%, 국제유가 55달러 선을 전제로 한 ‘베이스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전제가 달라지면 성장률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 재정정책의 약발이 잘 먹히면 올라갈 수도 있지만, 세계 경제침체의 골이 깊어지면 더 고꾸라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국장은 “최악의 경우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도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전망치가 1%냐, 2%냐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은뿐 아니라 국내 주요 경제 예측기관들은 내년 성장률을 전망하는 게 그 어느 해보다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대외 변수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경기가 얼마나 가라앉을지, 회복은 언제 어떤 속도로 이뤄질지는 수출 비중이 큰 우리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단적으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2%포인트 떨어지면 우리 성장률은 약 0.5%포인트 따라 떨어진다는 게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이다. 이 연구원의 허찬국 본부장은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놓고도 세계 주요 기관별로 크게는 3%포인트 차이가 난다”면서 “세계 경제의 향방이 가장 큰 변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2%라는 숫자의 함의는 간단치 않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성장률이 3%라도 어렵다고 하는데 2%나 그 아래라면 정말 심각한 침체”라고 우려했다. 사실상 일자리가 늘지 않아 취업이 더 어려워지고, 직장을 가진 사람도 실질 임금이 줄어들며 고통이 커질 수 있다. 권 실장은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게 분명해진 만큼 재정 투입의 속도를 높이고 새로운 대책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도 기로에 섰다. 금리 인하를 넘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처럼 기업어음(CP)을 사들이는 등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떠맡아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이성태 총재는 “비상사태의 경계선에 와 있다”고 표현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한은이 금리 인하로 수비 자세에서 공격 자세로 전환했다면 이제는 창조성을 발휘해야 할 때”라며 “기존 관행이나 규정에 얽매이지 말고 저축은행과 캐피탈회사 등 돈의 흐름이 막히는 구석구석을 찾아 풀어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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