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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살살녹는 한우뱃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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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중엔 마블링이 촘촘히 박혀 반지르르한 뱃살이 최고요, 돼지고기 중엔 살과 비계가 겹겹이 줄무늬를 만들어내는 삼겹살이 최고다. 이 둘은 고소하고 부드러운 기름기로 식도락가의 젓가락을 부르는 '뱃살'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름지고 다소 느끼하여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덕에 입안에서 살살녹아 없어지니 이 맛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맛있는 뱃살하면 '업진살'이라 부르는 '소고기의 뱃살' 역시 빠지지 않는다. 꽃등심이나 살치살, 낙엽살보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은 뒤지지 않기에 맛있는 음식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맛 볼만한 것이다. 두께가 2cm정도로 얇고 넓다란 업진살은 양지를 복대마냥 감싸고 있는 특수부위. 하얀색의 맑은 기름은 굵은 잎맥처럼 박혀있고 잎맥 사이사이엔 식육의 예술이라 불리는 섬세한 마블링(살코기 속에 지방이 분포된 상태)이 수 놓아져 있다. 이왕이면 한우로 맛보기를 추천하는데 한우를 무작정 편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한우에는 일반 소고기에 비해 올레인산이 풍부하여 육즙의 풍미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맛있는 업진살을 맛보기 위해 찾아간 곳은 전라남도 장흥군의 장흥시장(http://travel.jangheung.go.kr). 매주 토요일 풍물시장이 열려서 토요시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전남에서 한우를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다. 한우하면 주로 홍천, 횡성, 평창을 떠올리지만 장흥역시 한우가 사람보다 많은 한우마을. 최근에는 이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사육된 한우가 한마리에 1830만원에 팔리는가 하면 농촌진흥청에서 공모한 '한우명품화'프로젝트의 대상 시군으로 선정되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른새벽 집에서 차를타고 나섰는데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장흥시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앞으로 흐르는 탐진강과 강건너에서 나란히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 덕분에 나들이 기분을 더한다. 시장으로 들어가니 토산품 장터와 공연무대가 눈에 띈다. 토요일에는 장도 열리고 공연도 해서 동네 사람들까지 다 모여든다고 하는데 오늘은 평일이라 그런지 아무런 행사도 없고 한적해서 여유로움까지 느껴진다. 시장의 길을따라 늘어선 것은 한우판매장과 키조개, 낙지전문점. 오늘은 한우 맛을 보러왔으니 가장 눈에띄는 한우판매장으로 들어갔다.

육질 1+등급을 받은 한우를 지금 막 내놓은 참이었다. 앞다리와 뒷다리 허벅지가 섞인 육사시미를 1만원 어치 사고 구이용으로는 업진살을 700g정도(22000원/600g)주문했다. 육사시미용은 생선회 한점 만하게 썰어두고 넓직한 뱃살은 반으로 갈라 길다랗고 판판한 것을 돌돌말더니 칼국수 썰듯 숭덩숭덩 썰어 담아준다. 이젠 맛을보러 바로 윗층의 식당으로 올라간다. 기본찬이며 고기판, 상추등을 준비해주는 것으로 고기600g당 6000원을 받는다.

육회무침하듯 채 썰지 않고 도톰하게 썰어 놓은 육사시미는 고추장과 참기름, 다진마늘을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는다. 기름기가 없지만 생고기로 먹어서 전혀 퍽퍽하지 않고 부드럽다. 담백한 가운데 소고기 특유의 풍미도 있다. 이렇게 신선한 고기만 있다면 참기름, 계란노른자, 배를 섞어 버무리는 수고가 무슨소용일까. 충분히 맛이 좋다. 아니, 오히려 훨씬 더 맛이 좋다. 이번에는 뜨겁게 달군 돌판에 업진살을 구워본다. 살이 얇아 센불에 살짝만 익혀야지 시간을 끌었다간 육질은 질겨지고 육즙도 놓치고만다. '치~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 면이 다 익으면 뒤집고 뒤집자 마자 소금만 슬쩍 묻혀 재빨리 입속으로 옮긴다. 안쪽에 갇힌 육즙은 '주르륵'흘러나오고 몇번 씹었더니 살살녹아 없어진다. 약간의 기름기는 맛을 더한다. 셋이서 실컷 먹었는데도 고기값 식당값 다 해서 6만원이 안나오는 걸 보니 남도까지 5시간 넘게 달려온 보람이 있구나.

우리말 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소의 부위별 명칭은 100가지가 넘는다. 한 술 더 떠서 실제로 우리가 소고기를 분할해 먹는 부위는 무려 120여가지나 된다. 살면서 120가지의 부위중 몇 가지를 맛볼 수 있을진 모르겠다. 또 그 맛을 구별하고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참치뱃살, 삼겹살을 선호하는 미식쟁이라면 소고기의 뱃살인 '업진살'을 한번쯤 맛 보시라. 살살녹는 '식육의 뱃살'을 맛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테니 말이다.

김은아 칼럼니스트 eunahsty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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