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추억으로가는간이역>17.기장 일광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동해남부선(부산~포항)을 달리는 기차에는 낭만이 가득하다.

열차가 해운대역을 빠져나오자 싱그런 갯내음이 파도에 묻어온다.

오륙도를 돌아온 제주의 봄소식이 차창을 두드린다.하늘을 나는 한떼의 갈매기 사이로 비치는 바닷가 풍경이 너무나 한가롭다.

삼송리(부산시기장군일광면)일광역은 동해남부선이 통과하는 자그마한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삼송리는 김수영 감독이 만든 화'갯마을(1965년작)'의 무대였다.

원작(오영수)에는 갯마을을'더께더께 굴딱지가 붙은 모없는 돌로 담을 쌓고 낡은 삿갓모양 옹기종기 엎딘 초가가 스무집 될까말까한 조그마한 곳'이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주인공이었던 신영균과 고은아가 러브신을 벌였던 강둑 갈대밭은 이제 자취도 없다.

옹기종기 엎딘 초가들 역시 번듯한 양옥으로 변했다.

다만 아직도 남아있는 10여그루의 해송 속에서 지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더듬어 볼 수 있다.

영화'갯마을'은 과부들이 모여사는 가난한 어촌에서 젊은 과부와 어부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바닷가의 뛰어난 풍광과 함께 어촌의 여인네가 짊어져야 했던 한(恨)을 한국적 정서에 맞게 그려 아시아영화제와 제1회 스페인 카르타헤나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았다.

“당시 자그마한 마을에서 영화촬영을 한다니 발칵 뒤집혔지요.그러나 어린 소녀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어요.영화촬영기간중(18일간) 꼬박 촬영장소를 쫓아다닐 정도였어요.”

이곳 주민인 강영숙(姜英淑.49.기장군기장읍)씨가 전하는 당시의 마을 분위기다.

갯마을로 대표되는 일광면은 기장미역의 주생산지로 더 유명하다.미역은 예부터 부인들의 산후와 생일날 즐겨 먹었던 해조류.

특히 생미역을 살짝 데쳐 초장에 찍어 먹거나 여름철 먹는 냉채는 더위마저 가시게 한다.

미역은 칼슘을 함유한 강알칼리성 식품으로 피를 맑게 하고 변비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항암효과도 좋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특히 해조류를 많이 섭취하는 한국.일본등 동북아시아 여성들은 미국 여성보다 유방암 발병률이 3배이상 낮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여서 학계에서는 미역을 많이 섭취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미역농사는 매년 8~9월께 1~2㎞ 떨어진 앞바다에 손톱만한 종묘를 입식(入殖)시키면서 시작된다.1백일이 지나면 1백20여㎝의 크기로 자란다.

미역 채취는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요즈음이 제철이다.

25년간 미역양식을 했다는 김윤호(金潤湖.57.기장군일광면이천리)씨는“미역 양식장일대 바닥이 암반인데다 조류가 세게 흐르고 플랑크톤이 풍부해 미역양식의 최적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역은 햇볕에 말리는 건미역과 소금에 절이는 염장미역으로 나뉜다.

기장미역의 70%는 염장가공해 일본으로 수출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한창때인 80년대 후반까지도 이천리에는 14개의 공장이 있었다.그때는 일광면의 술집과 다방들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4개 공장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건미역은 4~5일간 햇볕에 말려야 한다.

그러나 염장미역은 뜨거운 물에 삶은 다음 소금에 약 3일간 절인 후 미역줄기를 따고 잎만 물에 헹궈 다시 말린다.건미역은 국을 끓였을 때 진한 맛이 우러나지만 염장미역은 한번 삶았기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

그러나 염장미역은 장기간 보관이 용이한 장점이 있다.

지난 95년 3월 부산시에 편입되면서 기장읍에도 개발 붐이 일고 있다.

그러나 불과 3㎞ 떨어진 일광면은 기장읍과 10여년의 차이가 날 정도로 옛 정취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제 물질을 하거나 후리(멸치를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를 당겨 잡어(雜魚)를 나눠받던 아낙네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파도는 오늘도 변함없이 갯바위에 부딪친다. 〈기장=김세준 기자〉

<사진설명>

일광역은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로 붐빈다.그러나 지난 95년 3월 부산시에 편입된후 시내버스 운행이 늘면서 차츰 이용객이 줄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