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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B, 오바마노믹스 실세로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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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9일(현지시간) 미 자동차업체의 금융 지원과 구조조정을 관리할 감독기구의 책임자(차르·czar)로 폴 볼커(81·사진)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언급했다. 그는 이날 미 방송에 출연해 “자동차업계 구제법안이 이번 주 통과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감독기구 책임자로는 초당파적인 신임과 국민의 신뢰를 받고 있는 폴 볼커 같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볼커는 지난달 말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에 의해 차기 정부의 대통령 직속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의장에 임명됐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ERAB의 인물 구성으로 볼 때 이곳에서 오바마 경제 정책을 주도할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며 “볼커의 자동차 차르 지명은 ERAB에 대한 주목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ERAB는 오바마가 유일하게 신설한 조직이다. 그리고 의장과 사무국장 등 핵심 두 자리에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최측근 경제 참모를 앉혔다. ERAB는 1956년 미국과 소련 간 냉전 당시 관료체제만의 대응에 불안감을 느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폭넓은 정보 확보와 정세 분석을 위해 설치됐던 대외정보 자문위원회(FIAB)를 본떠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바마는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 수혈을 위해 ERAB를 신설하며, 솔직한 평가와 분석을 기대한다”고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재계·노동계·학계의 대표 인사들로 구성된 ERAB는 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 정책에 반영할 것으로 기대된다. 주된 업무는 일단 주택시장의 난맥상 해소, 금융감독 체계 개선을 통한 금융시스템 안정 등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특히 ERAB의 역할에는 사실상 아무런 제한이 없다. 그래서 순수한 정부 자문기구 역할을 해 온 경제자문위원회(CEA)와는 달리 오바마 정부의 정책 입안·집행에 관여할 것이란 견해가 많다.

볼커는 오바마가 가장 신뢰하는 원로 경제인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여름 오바마와 첫 교감을 나눈 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바마는 대선전이 한창이던 7월 경제 참모 회의를 할 때 볼커를 바로 옆자리에 앉혔다. 볼커는 “금융위기는 은행들의 대출 능력을 위협할 것이다.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며칠 뒤 경제 연설에서 같은 말을 했다. 볼커를 ERAB 의장에 임명하면서 오바마는 “사정을 봐주지 않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볼커가 기존 관료체제의 안전한 경제 해법 대신 독창적이고 공격적인 정책을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ERAB 사무국장에 임명된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대 교수는 오바마의 핵심 경제 참모다. 2004년부터 오바마를 도와 ‘오바마노믹스’의 설계자로 평가받는다. 굴스비는 대선 기간 오바마 캠프의 대표로 TV에 출연해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았다.

외교 소식통은 “위기 상황임을 감안해 내각 인선에서 경험과 안정을 내세운 오바마가 ERAB를 통해 막후에서 자신만의 중도 진보적 경제 정책 수립을 준비할 가능성이 있다”며 “ERAB에 참여한 민간 분야 전문가들이 오바마 집권 기간 중 중요한 인재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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