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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끝나지 않는 위기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 증권사가 중국시장 담당 애널리스트를 중국에 급파했다. 중국경제의 상황을 알아보라는 지시였다. 해당 애널리스트로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출장이었다. 중국팀장을 맡은 지 이제 6개월, 중국을 특별히 연구한 적도 없고 중국어는 한 마디도 못하는 그였다. 어쨌든 그는 선양(沈陽) 청두(成都) 둥관(東莞)등을 쏘다니며 시장조사를 했다.

그의 눈에 비친 중국은 파국을 향해 달리는 기차와 같았다. 어디를 가나 적자, 위기, 실업, 마이너스 성장 등 부정적인 얘기 뿐이었다. 그의 머릿 속에 박혀있던 '세계 경제의 견인차'라는 중국의 이미지는 깨졌다.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는 귀국 후 '중국 보고서'를 썼다. 당연히 부정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보고서는 투자가들에게도 뿌려졌다. 15일 동안 돌아본 중국으로 완벽한 보고서가 나온 것이다.

이게 가능한 얘기인가?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물론 다른 분야를 연구하던 사람이 중국을 보면 새로운 중국이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시너지 효과'도 중국에 대한 바탕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기해하기 어려운 얘기다.

'15일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 온지 15일 만에 책을 쓰지 않으면 영원히 중국 관련 책을 쓰지 못한다'라는 말이다. 알면 알 수록 복잡하고 헷갈리니 말이다. 투자가들의 자산을 지켜야할 증권사의 중국분석이 '15일의 오류'에 빠져서야 되겠는가?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상하이 한 공사 현장에서 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다. 그의 스탠스가 아찔하다.

중국경제가 위기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세계 경제가 침체로 빠져들면서 수출이 급감, 수출기업들이 도미너처럼 쓰러지고 있다. '수출로 일어난 나라 수출로 망한다'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게다가 주가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금융권도 불안하다. 그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본 그대로다.

여기가 끝인가?
No, 아니다.

세계경제에서 끝나지 않은 위기가 있었던가? 없다. 끝나지 않은 위기가 있었다면 오늘날의 풍요는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이번 세계경제 위기도 언젠가 끝나게 되어 있다.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다.

중국도 그럴 것이다. 이 위기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중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충격을 덜 받고, 더 빨리 위기에서 탈출할 수도 있다. 세계 3위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고, 어느 정도 자립경제의 틀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중국경제는 지금 위기국면이다. 그러나 그 표면적 위기 이면의 흐름을 간파해 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위기가 끝난 후 중국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변해 있을지, 또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지를 연구해야 한다.

중국은 어쨌거나 내년 8%안팎의 경제성장세를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나라다. 철도를 깔고, 농촌을 도시화하겠다고 나서는 이유가 바로 8%를 지키기 위해서다. 8%, 그게 어디 쉬운 숫자인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던 우리들의 머리 속에서도 8%성장의 추억은 아련하기만하다.

다른 선진국 경제가 마이너스로 곤두박칠치고 있지 않는가? 이 같은 상황이 3년 동안 이어진다고 하자.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이 어찌 되겠는가?


▲상하이의 지하철 공사현장. 중국 15개 주요 도시에서 지하철공사가 한창이다.

너무 낙관적으로 중국을 본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하나하나 따져보자.

중국 체제에서 나오는 특성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진 이후 서방 금융권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중국 은행 역시 부동산대출이 많아 '다음은 중국 차례?'라는 전망이 서방 언론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중국 금융권은 별 문제 없이 금융분야 위기를 넘기고 있지 않는가?

금융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좀더 깊이 중국 금융업으로 들어가보자.

중국의 주요 상업은행은 모두 국유은행이다. 주식시장에 상장이 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은행이다. 은행이 흔들린다? 이는 곧 중국 국가가 흔들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중국은 결코 금융위기가 발생하도록 수수방관 할 수 없는 나라다. 그리고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충분한 자금도 갖고 있다.

중국은 외국자본이 마음대로 들락일 수 없도록 되어 있다. IMF의 압박으로 홀딱벗겨진 채 월가의 사냥감이 됐던 우리와는 다르다. 중국에 유입된 Hot머니가 유출한다고? 턱도 없는 소리다. 혹 Hot머니가 들어왔다면 그건 이미 중국 돈이다. 최근 중국 금융당국은 3만 달러 이상의 해외자금 유출은 세무 내역을 신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근거없은 자금의 해외유출 창구를 실질적으로 막아버린 것이다. 달러가 밖으로 나갈 것 같으면 이처럼 창구를 막으면 그뿐이다. 그게 중국이다.

중국경제의 어려움은 역시 실물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수출이다. 금융위기가 실물분야로 번지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중국 수출은 지난 11월 7년만에 첫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갑자기 수출이 끊기니 기업이 줄도산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동부 연안지역 기업이 어렵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이 수출부진으로 문을 닫을 것이다. 위기의 몸통이 드디어 현신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 전체 GDP 11.9% 중에서 순수출이 차지한(공헌한)비율은 2.6%포인트였다. '수출이 이끄는 경제'라는 말이 실감난다. .중국 전문가들은 내년 순수출의 GDP공헌률이 마이너스 1.5%포인트 정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외부문 GDP가 4%포인트 정도 수직 낙하하는 셈이다.

그걸 SOC투자와 내수확대에서 보충하겠다는 게 중국의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4조 위안에 달하는 경기부양 대책으로 내년 1.5%포인트의 GDP성장률을 전망한다. 특히 철도에 기대가 크다. 내수는 올해 정도의 GDP기여율이 목표다. 이 계산이 맞을 경우 내년 GDP가 9%안팎(11.9-4.1+1.5=9.3)에 달할 것이라는 게 중국 관방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내수시장 위축으로 소비분야 GDP성장률이 떨어져도 8%는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중국은 경기부양을 위한 카드가 많다. 바로 앞 칼럼에서 본 대로이다. <혹 읽지 않으신 독자분들은 여기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0290590 를 클릭하시라> 특히 최근에는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낮추겠다는 뜻도 분명히하고 있다. '우선 내 새끼(수출기업)부터 살리고 봐야겠다'는 것이다.


▲쓰촨성 청두의 한 백화점. 소수민족 복장의 점원이 토산품을 팔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게 하나 있다. 수출감소는 중국이 원래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1990년대 말부터 경제성자에서 차지하는 수출을 낮추는 대신 내수비중을 높이려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다만 2001년 WTO가입과 선진국의 경기호황으로 수출이 급증하면서 그 정책이 늦춰졌을 뿐이다.

중국은 지금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나라 박정희 시절처럼 말이다. 지금은 11차 시기로 지난 2006년 시작돼 2010년에 끝난다. 그런데 그 11차 계획의 핵심 사안 중 하나가 수출산업(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구조조정이다.

중국은 그 계획에 따라 다양한 정책을 강도 높게 시행해 왔다. 저부가분야 외국기업의 직접투자를 제한했고, 노동자 복지 개선을 위해 노동계약법을 만들었고, 동부지역의 임가공 공장을 내륙으로 몰아내려 갖은 노력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세계 경제위기가 터친 것이다. 세계 경제위기는 분명 중국이 계산하지 못한 사안이었고, 큰 충격이었다. 그동안 추진해오던 수출산업 구조조정 작업이 헝클어진 것이다.

어쨌든 중국이 이번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면 수출산업은 고도화될 수도 있다. 동부연안 지역의 생산성 낮은 수출기업들은 지금 모조리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죽음이외의 선택은 없다. 중국이 그동안 하려고 했던 수출산업 구조조정이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이뤄지는 것이다. 물론 중국 중소기업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겠지만 말이다.

다시 종합해보자.

선진국들이 제로(0)성장의 늪에서 해메고 있을 동안에도 중국은 8%성장을 지키겠다고 한다. 금융분야는 국가의 지원하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수출산업은 어느 정도인지는 분명히 말하기 어렵지만 고도화될 것임은 분명하다. 내수시장도 크게 확대될 것이다. 이 위기가 끝날 때 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경제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분명 너무 낙관적인 얘기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 낙관적이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중국경제를 낙관적으로 본다. 그렇다고 중국경제의 문제점을 의도적으로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도 안된다. 경제에 공짜 점심은 없은 법, 중국경제에도 문제는 많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는 집중 다뤄 볼 생각이다.

다만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중국경제를 좀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자는 것이다. 지난 30여년 중국은 개혁을 통해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냈던 나라다. 그 개혁은 이번 위기 속에서도 진행중이다. 그 흐름을 읽고 내일을 대비하자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지금 나타나는 중국의 위기적 현상만을 보고 '여기는 아닌 게 벼~'라고 돌아선다면 그건 하수(下手)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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