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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재물있는 곳에 책임도 있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보사건의 핵심은 제도와 제도의 운영 잘못에 있다.다만 부패한 정치가와 관료는 대부분 금전을 받고 부정을 한다는 일반적 특징이 있다.그래서 그들은 법을 어기면서 뇌물을 챙긴다.만일 돈을 받은 정치가.관리.은행장이 하나도 없는 한보

사건이 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가령 말이다.뇌물은 받지 않았는데도 주거래 은행을 바꿔주면서까지 5조원 은행 대출외압(外壓) 전달의 끈을 당긴 고위권력이 있었다면 그런 사건에는 검찰이 별 용도가 없을 것이다.단지 담당장관이 무책임하고 경솔해 당진제철소 사업허가를

내주었다면 아무도 그런 때는 지금처럼 검찰의 축소수사를 원망할 길도 없을 것이다.

범법적인 돈을 받은 사람이 개재되었다고 치자.그래도 문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본질은 돈을 먹고 했든 안 먹고 했든 권력이 은행대출.사업허가를 좌지우지하는 것,그것이다.이것을 제쳐두고 돈 먹은 자만 잡아가는 검찰더러 한보사건을

해결해내라는 것은 어리석다고까지 할 수 있다.먹은 돈의 액수가 범인들이 약지 못했거나 급한 김에'시세'보다 실제로 훨씬 적었다든지,증거를 잡을 수 없을 만큼 범인들이 교활한 때는 그야말로 외양간도 못 고치고 소만 잃고 또 잃는 경염?되고 만다.

사실 그랬다.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개혁이 부정을 줄이기는커녕 단위당 부정금액의 규모만 확대시켜온 가장 큰 까닭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은행경영을 주주들의 손에 넘기지 않고 있는데 있다.그 바람에 은행대출에는 아무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1억원을 수회한 행장은 1억원어치만 감옥살이를 하지만 그것을 받고 빌려준 은행돈 1천억원이 부실채권이 되면 1억원과 1천억원 사이는 누가 무슨 방법으로 책임질 것인가.이 무책임을 노리고 은행인사를 좌우할 힘이 있는 권력은 은행

대출에 외압이되어 개입하는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크고 작은 모든 사업을 관료가 규제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들은 허가조건을 충분히 갖춘 신청서도 트집잡고 허가조건에 미달하는 신청도 통과시킴으로써 규제를 돈 받고 파는 상품으로 만들어 장사를 한다.사정 바람이 불면 송

사리들은 잠시 몸을 숨기지만 프로들은'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리스크를 커버할 만큼 부정의 단가를 올릴 뿐이다. 나는 이번에도 검찰수사나 국회 청문회가 한보사건을 밝히는 것과는 거의 관련 없는 행사(行事)라고 주장하고 싶다.죄를 지은

사람을 다 잡아내고 그 죄의 전모를 끝까지 밝히는 것은 물론 반드시 필요하다.그러나 이것으로는 한보사건을 밝혀내지 못하고 만다.설령 김현철(金賢哲)씨나 민주계의 대선후보자 가운데 어떤 월척(越尺)짜리가,극단적으로 金대통령 자신이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을 검찰이나 청문회가 밝혀내더라도 그것은 단지 현행법상의 정의를 실천하고 백성의 울분을 잠시 푸는데만 겨우 봉사할뿐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부정부패와 관련되어 전직대통령을 두 사람이나 감옥에 잡아넣어 놓고 있다.이렇게 나가다가는 한국식 민주정치는 전직대통령을 잡아가둠으로써 백성이 스스로 선출한 권력에 복수하고 억울함을 푸는 현대판 콜로세움 투기장(

鬪技場)으로 특징지워질 수도 있다.이 현상을 일부 풍수지리(風水地理)도사들은 지금 청와대의 터가 흉한 곳이기 때문이라는 가설로서 설명한다고 한다.

은행경영의 주주 귀속과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철폐를 기어이 반대하는 세력으로는 여당(정강에 관계없이 정권을 잡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노조지도자들.진보적 지식인이 있다.그러나 은행은 주인을 찾아주고 기업규제는 철폐하는 것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은행대출과 사업허가 관련 부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범을 청하려면 숲을 길러야 한다'는 말이 있다.우리는 옳은 대통령을 뽑으려고 노력하기보다 먼저'경제는 주주와 주주가 선임한 경영자가 책임을 지는'제도를 길러야 한다.성경은'네 재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가르친다.진정한 자본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재물이 있는 곳에 책임도 있다는 점이다. ( 강위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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