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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찾아서>21.천태산 國淸講寺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조 주:한산·습득을 흠모했는데 와서보니 별것아닌

두마리의 수고우(水 牛)가 있을 뿐이군.

한·습:두사람은 곧 치고 받는 투우 흉내를 냈다.

조 주:쉿! 쉿!(싸우지 말라고 꾸짖는 시늉)

한·습:이를 악물고 서로 노려보았다.

조 주:이내 선방으로 돌아가버렸다.

한·습:(선방으로 쫓아가 물었다)

아까 그 인연은 어떤가.

조 주:껄껄 크게 웃었다.

조주선사(778∼897)가 행각중 국청사에 들렀다가 한산·습득을 만나 나눈 거량(擧揚)이다. 조주의 첫마디는 ‘당신들, 단순한 두사람의 불자에 불과할뿐’이라고 건드려본 것이다.

이에 한산과 습득은 투우의 자세를 통해 ‘뭐라고! 천만의 말씀, 우리는 단순한 은둔자가 아니야!’라고 받아쳤다. 투우 자세 속에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힘 있는 소야!’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두사람이 선방으로 쫓아가 물은 것은 ‘자네 우리의 뜻을 알았는가’라는 추궁이다. 조주는 여기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회심(會心)의 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시말해 조주의 껄껄웃음은 두분의 뱃속(법력)을 알았다는 지음(知音)의 표시다. 이쯤되면 쿵짝이 맞아 떨어지는 거량이다. 이같은 치열한 선문답의 예는 수없이 많다.

조주:당신이 투자산 움막 주인이

아니오.

투자:용돈이나 좀 주게!

장으로 기름을 사러 나가는 투자대동선사(819∼914)를 도중에서 만났던 조주가 먼저 올라가 움막에 앉아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투자가 기름 한병을 사들고 왔다.

조주:투자에 대한 명성을 많이

들었는데, 내 눈엔 기름장수

늙은이만 보이네.

투자:자네는 기름장수 늙은이만 보았지

투자는 모르는군.

조주:어떤 것이 투자인가.

투자:(기름병을 쳐들고)기름요, 기름!

조주의 물음에 투자대동(投子大同)이 ‘용돈이나 좀 달라’고 한것은 질문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선에서는 이같은 ‘무시’가 역설적으로 커다란 존경을 나타낸다. 투자는 조주에게 ‘당신같은 선객이면 투자의 현존(現存)과 에너지의 장(場)을 당신 스스로 볼수 있고, 이해할 수있지 않는가’라고 대꾸한 것이다. 즉 스스로 도(道)를 볼수 있는 눈을 가진 조주임을 인정한 것이다.

투자는 또 이 한마디를 통해 ‘나는 가난한 선사다.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것은 돈이오’라고 가난한 자신의 현존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마지막 투자의 일성 ‘기름요, 기름!’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아침에는 기름조차 없었다. 이 순간에는 오직 기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너에게 기름 살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 투자에 대해 공연스럽게 무엇을 묻는가. 기름이 떨어져 기름을 사왔다는 것 이외의 내 현존은 없다. 산다는게, 존재한다는게 이런 것 아니냐.

‘투자산주(投子山主)’라는 이 화두는 인간실존의 밑바닥을 까뒤집은 엄청난 아포리즘(격언)을 내포한 큰 소식이다.

다시 한산·습득의 얘기로 돌아가자.

위산선사가 국청사 수계법회 참석차 천태산을 갔다. 마침 습득이 마당을 쓸다가 밥을 얻으러 온 한산의 손을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위산이 습득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자네의 가풍(家風)인가.

습득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마당바닥에 내려놓고 차수(叉手:두손을 앞에 모은채 공손히 고개 숙여 예를 표하는 여인의 절)하고 우뚝 섰다. 위산이 다시 반복해 묻자 습득은 비를 들어 마당을 쓸면서 가버렸다. 이래서 빗자루는 습득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모자란 듯한 습득의 차수는 모든 것을 털어버린 일체단진(一切斷盡)의 마음 씀씀이(본체)를 드러내 보여준 것이다. 위산은 본체에서 더 나간 구극의 경지를 요구한다. 이에 비를 들어 마당을 쓴 것은 차수를 통해 보여준 본체가 절대자유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실상을 드러내 보인 행동언어다.

습득은 한산의 토지신묘(廟)에 있는 신상(神像)에게 매일 공양을 했다. 어느날 보니 공양으로 갖다놓은 밥을 까마귀가 먹고 날아가버린다. 습득은 달려가 신상의 뺨을 마구 때리면서 외쳐댔다.

“이 못난 놈아, 제 밥도 못찾아 먹는 놈이 무슨 도량(道場)을 지켜! 이 얼간이 놈아!”

흔히 말하는 ‘미치광이 짓’이다. 그러나 선장들의 광기어린 행동안에는 펄펄 살아서 뛰는 진리가 제시돼 있다. 습득은 죽어 있는 신이 아닌 살아 있는 신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제 밥도 못찾아 먹는 놈’을 어리석음의 표본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밥을 먹는 신(神), 오줌을 누는 신은 나 습득뿐이라는 ‘자만심’조차 엿보이는 일화다. 그는 관념적인 머릿속의 부처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한 육신을 가진 부처를 원한다.

선림이 손꼽는 대표적인 부처의 육화(肉化)는 미륵불의 화신이라는 배불뚝이 포대화상(布袋和尙:?∼917)이다. 그래서 중국의 모든 절은 도량 수호신으로 가람 출입문인 사천왕문에 포대화상을 모신다.

그의 불뚝 나온 배는 ‘자연’을 상징한다. 인간의 생사 귀의처는 자연이다. 우리는 자연이라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다가 다시 그 뱃속으로 돌아간다.

인간의 신체구조중 배가 자연에 가장 가깝다. 또 복부(腹部)는 인간 존재의 전체를 나타낸다. 이래서 포대화상의 배는 생사원리를 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습득이 원한 살아 있는 부처란 마치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육화로 나타난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라고 볼수 있다.

명암 한산사에는 산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습득의 전설이 담긴 조그만 토지신묘가 있다. 물론 복원해 놓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스꽝스럽게 볼지도 모를 이 토지신묘를 보는 순간 기자는 삼가 엄숙한 자세를 취했다.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할 수 없는 절박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사진기자에게 잘 찍으라고 일렀다.

한산과 습득이 누룽지를 맛있게 먹던 국청사 부엌도 샅샅이 뒤져보면서 사진으로 담았다.

국청사는 원래 천태종 종찰이었으나 당·송대 선불교 전성기에는 선종사찰이었다. 이 절에 주석한 ‘천태삼은(天台三隱)의 한사람인 풍간선사는 한산과 습득의 스승이다.

사찰 정문 입구의 개울을 건너는 다리 이름이 지금도 ‘풍간교(豊干橋)’다. 풍간선사를 기리어 붙인 이름이다. 국청사에는 풍간이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는 전설을 기리는 호소당(虎嘯堂)이란 전각도 있다.

현재 다시 천태종 본산이 된 국청강사는 본격적인 참선은 하지 않지만 옛날 선당은 그대로 남아 있다. 국청강사(교종사찰은 講寺라 하는게 중국불교 관례임)에는 수나라때 심었다는 큰 매실나무가 한 그루 있다.

이 매실나무는 문혁때 죽었다가 개방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소생, 지금은 완전히 옛모습이라고 한다.

신라·고려스님들이 오면 유숙했다는 신라원(新羅院)이 산문입구 만공지(滿空池:방생지)앞에 있다.

우리를 안내한 국청사 시승 월관법사에 따르면 한때는 1백명의 신라·고려스님이 유학와서 유숙한 적도 있다고 한다.

증명:月下 조계종 종정 ·圓潭 수덕사 방장

글:이은윤 종교전문기자 사진:장충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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