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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회 예결위, 상임위로 바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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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생각해보면 한국 정치 상황에서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항상 정부 편에 서 있는 여당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시간에 쫓겨 급하게 처리되어야 야당의 간섭을 줄일 수 있다. 야당은 여당이 단독으로 예산안을 처리하기에는 여론의 비판이 부담스럽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야당은 예산처리 문제를 다른 정치쟁점과 연계하여 유리한 협상의 기회로 삼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된다.

이처럼 여야가 서로 다른 정치계산을 하기 때문에 제때 예산안 처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여론과 날짜의 압박 속에서 막판까지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전략구조를 갖게 된다. 매번 늦어지는 예산안 늑장처리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첫째는 현재 특별위원회로 되어 있는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임위원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2000년에 예결위를 비상설 특위에서 상설 특위로 전환했지만 여전히 일반 상임위원회와는 차별적이다. 우선 예결위원의 임기가 1년이기 때문에 매년 위원회가 새로 구성되어야 하고, 위원의 교체율이 80%에 달해 매년 거의 새로운 위원들로 구성된다.

일반 상임위원회 임기가 2년인 데 비해 예결위 임기가 1년인 이유는 대다수 의원이 예결위에 속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힘있는 예결위에 배정되는 기회를 많이 만들기 위해서 임기를 짧게 하는 방안이 고안된 것이다.

그 결과 다른 상임위와 겸임하는 1년 임기 위원회에 대한 위원들의 소속감이 낮기 때문에 예결위 운영은 다른 정치적 요인들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예결위를 완전한 상임위원회로 전환하여 임기를 다른 위원회와 일치시키고, 위원들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높이는 제도개선이 요구된다.

예결위의 상임위 전환이 예산안 처리지연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원들의 책임성과 지속성이 높아지고, 늑장 예산심의에 대한 예결위의 책임이 커진다는 점에서 예결위의 상임위원회 전환은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국회의 비효율적 운영이 제도의 미비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라는 점에서 의장 권한의 적극적 행사가 늑장국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올해 여야 간 예산안 처리 합의과정에서 국회의장의 적극적 역할이 그 사례다.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의장은 소속 정당을 탈당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초기에는 이러한 규정이 형식적일 뿐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국회의장의 중립성은 강화되어 가고 있다.

그동안 국회의장은 국회법에서 규정한 권한을 행사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국회가 정당 간 합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국회의장이 당파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법 준수에 국회의장이 적극적 역할을 하는 것은 국회의 수장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국회의 정상 운영을 도모하는 것이 국회의장의 더 큰 책무라는 점에서 정상 국회를 위해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의 권한을 좀 더 적극적으로 행사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들은 현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좀 더 큰 권한이 부여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산에 관해서만도 예산심의 기간의 연장, 예산과목의 상세화, 예비타당성 조사, 예비비에 대한 통제 강화 등 많은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주어진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국회에 더 큰 권한을 주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국민 여론이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