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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 소년’의 상상력은 마르지 않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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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03면

미야자키 하야오(67)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연친화·환경보호·반전 등의 주제와 그를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이번엔 ‘물고기 소녀’ 포뇨 길어낸 미야자키 하야오

1978년 감독 데뷔작 ‘미래소년 코난’은 핵전쟁으로 철저하게 문명이 파괴되어 바다로 덮인 세계에서 시작한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나온 최신작 ‘벼랑 위의 포뇨’에서 세계는 다시 한번 바다로 뒤덮일 위기에 놓인다.포뇨는 인간 세계가 싫어 바다로 떠난 마법사 아버지와 대양의 여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얼굴의 물고기 소녀.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인간 소년 소스케와 포뇨는 서로 좋아하게 되고, 두 어린이의 사랑은 바다로 뒤덮일 뻔한 지구를 구한다는 게 18일 개봉하는 ‘벼랑 위의 포뇨’의 줄거리다.

1941년생이지만 미야자키에게서 은퇴의 기미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세계 유수 영화제들로부터 받은 찬사가 노익장을 뒷받침하는 분위기다. 2001년 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부문과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62회 베니스 영화제에선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그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지브리 박물관은 전 세계 ‘아니메(Anime)’ 매니어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지난 7월 일본에서 공개된 ‘벼랑 위의 포뇨’는 극장에선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대박을 터뜨렸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미야자키도 이제 늙었다’는 신통찮은 평가를 들어야 했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영상과 동화적인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 관객의 호응은 폭발적이었지만 부모 세대는 뒤로 갈수록 모호해지는 플롯에 고개를 흔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사실 그의 작품 목록을 살펴봐도 어린이용, 온 가족용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이웃집의 토토로’ 정도다.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10대 중반 이하의 소년 소녀임에도 오히려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장대한 모험 드라마 ‘천공의 성 라퓨타’부터 일본 전설을 배경으로 한 ‘원령공주’에 이르기까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놀라울 만큼 성숙하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돼지 얼굴이 되어 숨어 사는 노장 파일럿의 이야기인 ‘붉은 돼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미야자키는 이런 평가에 대해 주인공 소스케가 자신의 아들 고로의 다섯 살 때를 모델로 했으며 “처음부터 다섯 살짜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어쩐지 이 작품 속의 어른들은 동화적인 상상 속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다.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물고기가 사람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소스케를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구박하지 않는다.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고 자란 어른’들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의 장남 고로의 감독 데뷔작인 ‘게드 전기’(2007)는 혹평을 받았지만,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보고 자란 ‘제2의 미야자키’가 즐비하다.

그 또한 자신을 애니메이터로 만든 것은 ‘우주소년 아톰(원제:철완 아톰)’ ‘사파이어 왕자’ 등을 만든 선배 데쓰카 오사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한국에서 제2의 김청기(‘로보트 태권V’), 제2의 신동헌(‘홍길동’)은 언제쯤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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