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분 춤추려 21개월 땀흘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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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무대위 11명의 아이들이 높이 든 촛불이 꺼졌다. ‘14분 공연’의 끝, 무대위에서 춤을 춘 아이와 객석에서 이를 지켜본 부모들의 눈가가 젖었다. 200명의 관중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다. 3일 안양 대림대학에서 있었던 장애인 무용단 ‘필로스’의 제 1회 정기공연의 모습이다.

‘필로스’가 3일 안양 대림대학에서 제1회 정기공연을 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이루마씨가 특별 게스트로 참여했다. [필로스 무용단 제공]


이날 공연에서 장애아동들은 한국 무용 ‘선녀춤’과 현대무용 ‘새들의 노래’를 선보였다. 각각 13분과 14분의 짧은 춤이었다. 아이들은 이 춤을 위해 무용단이 창단한 지난해 3월부터 1년 9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연습해야 했다. 아이들이 지적장애 또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어 신체적·정신적 발달이 늦은 까닭이었다. 무수한 ‘반복연습’이 있었기에 이날의 공연이 가능했다. 부모들은 “동작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공연을 끝까지 마무리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며 감격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조동빈(13)군은 지난해 3월 무용단에 입단했다. 입단하기 전 조군은 ‘흥’을 모르는 아이였다. 노래를 따라 부르지도, 박자를 맞추지도 못했다. 어머니 우미숙(42)씨는 “아이가 몸치라 주변의 권유로 무용단의 오디션을 보러갈 때만 해도 ‘다이어트나 시킬까’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무용단에 들어간 뒤 아이는 서서히 변해갔다. 조용하던 아이가 노래방에서 몸짓·손짓을 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4월에 있었던 학교 수련회의 장기자랑 때 동빈이는 친구와 함께 노래를 부르겠다고 나섰다. 우씨는 그런 아이를 말려야 했다. ‘놀림거리가 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그러나 동빈이는 장기자랑에 나가 2등을 했다. 10월에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영어 노래 대회에 특수반 친구 3명과 함께 나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우씨는 “처음에는 장애아라고 봐준 게 아닌가 했는데 실제로 정말 잘했다고 하더라”라며 “무용단 활동이 아이에게 자신감을 준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적장애 2급인 문소연(13·여)양은 아이돌 가수 그룹 ‘소녀시대’를 좋아한다. 평소 소녀시대의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따라하는 걸 즐긴다. 어머니 양은미(40)씨는 “그동안 아이의 끼를 살려 무용학원을 보내주고 싶었는데, 일반 학원에 보냈다가 아이가 따라가지 못해 상처를 받을까 싶어 보내질 못했다”고 했다. 문양은 무용단에 가는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엄마 오늘 필로스 가는 날이네”라며 신발과 옷을 먼저 챙긴다. 신체 발달이 늦어 뻣뻣한 몸도 조금씩 유연해졌다. 어머니 양씨는 “장애를 가진 아이가 무대 위에 올라서서 남에게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라며 뿌듯해 했다.

필로스 무용단의 모체는 대림대학에서 운영 중인 ‘장애아동 무용체육교실’이다. 2005년 11월부터 무용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임인선 교수(사회체육학과)는 “1년의 연습을 끝으로 체육교실을 마치게 된 아이의 부모들이 ‘더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해 무용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무용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디션을 통과해야 한다. 오디션은 선생님의 몸동작을 따라할 수 있는지, 대화가 가능한지 등을 본다. 임인선 단장은 “무용은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진 비장애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무용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해 낼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라며 웃었다.

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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