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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칼럼

대북 삐라, 잃는 게 더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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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1970년대 후반 이란 국왕 팔레비는 막대한 오일달러로 이란을 서구화·미국화하는 백색혁명으로 중동의 패권을 쥐려는 꿈을 키웠다. 그는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이 모사데크의 좌파정권을 타도하고 왕위에 복귀시킨 사람이었다. 아야톨라 호메이니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지도자들은 유럽으로 망명해 팔레비의 백색혁명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그때 호메이니가 쓴 것이 소형 녹음기였다. 그는 팔레비 축출을 선동하는 연설을 담은 녹음기를 이란 국내로 무수히 밀반입시켰다. 국내의 호메이니 추종자들은 열광했다. 1978년 국왕 팔레비는 해외로 망명하고, 이듬해 호메이니가 돌아와 선포한 이슬람 공화국이 오늘날 미국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고 있는 이란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 반체제 선동이 적힌 삐라가 김정일 체제를 흔들고 북한의 인권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대답은 “노”다. 이란은 7개국과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나라여서 국경 산악지대를 통한 사람과 물자의 몰래 입국, 몰래 출국의 길이 크게 열려 있다. 반체제 운동의 주체인 호메이니에 대한 이란 시아파 무슬림들의 지지는 절대적이었다. 악명 높은 팔레비의 비밀경찰도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반(反)팔레비 기운 앞에 무력했다.

북한은 어떤가. 100% 고립된 사회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남북, 북·중, 북·러 휴전선과 국경은 물샐 틈 없다. 그래서 북한 사회에 삐라에 호응하는 조직된 세력이 있을 수 없다.

삐라는 날아도 대북 반체제운동의 주체는 없다. 삐라는 선전효과를 내는 데는 녹음기를 못 따른다. 호메이니의 녹음기가 바다를 흔들었다면 대북 삐라는 작은 실개천에 파문을 일으킬까 말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가족들이 삐라 보내기를 계속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심리적인 만족을 기대해서일 것이다. 그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떠받드는 6·15선언과 10·4합의가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인권을 개선하기는커녕 김정일 체제의 연장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북한 주민들이 주워서 읽는 몇 장의 삐라가 김정일 체제라는 큰 둑을 무너뜨리는 개미구멍 노릇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모든 일에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양면이 있다. 대승적으로 삐라 살포의 득실을 저울질해 보자. 삐라가 북한 당국이 남북대화와 금강산·개성 관광을 중단하고, 개성공단의 규모를 줄이는 조치를 취하게 만든 동기라면 삐라 살포로 얻는 작은 심리적인 효과와 개성·금강산에서 근무하는 3만7000여 명의 북한 사람들이 이웃과 친구들에게 남한 사람들과의 접촉 결과를 속삭임으로써 북한 사회에 일어나는 잔잔하지만 지속적인 파문을 비교해야 한다.

삐라의 효과를 남북대화의 중단과 남북관계 악화로 생기는 기회손실과도 비교해야 한다. 북한 문제가 해결과 악화의 기로에 섰다. 버락 오바마는 북한에 대해 열린 자세로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다. 비핵화의 집념이 강한 그는 강력하고 직접적인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밝혔다. 북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 해결의 호기를 맞은 것이다.

삐라가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후퇴시키고,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오바마 정부의 북·미 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그 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개선될 기회가 가물가물 멀어진다면 삐라 살포로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많다. 삐라를 날리는 사람들이 바라는 게 북한 주민들의 생활과 인권이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이라면 삐라 살포보다는 남북협력과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북한 사회의 전향적 변화라는 큰 그림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삐라 살포의 득실을 실증적으로 설명해야 할 마당에 전직 대통령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국민적 저항을 선동한다. 삐라를 살포한다, 못 한다로 좌우파 세력이 여야와 남북한 대리전쟁을 치른다. 이건 정부와 국회와 시민사회가 있는 나라의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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