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청룽 같은 아름다운 부자가 많아져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세계적 쿵후 스타 청룽(成龍)이 4000억원대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평소 수입의 일정액을 꼬박꼬박 기부해온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은행 통장을 깨끗이 비워 가족이 아닌 사회에 내놓겠다”고 했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은 것처럼 죽을 때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것이다.

청룽의 행보는 아낌없이 베푸는 부자로 잘 알려진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스스로 번 돈이지만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고, 검약한 생활을 즐기며, 자식들에게 유산을 남기지 않겠다는 게 이들의 공통점이다. 외아들을 둔 청룽은 “아들에게 능력이 있으면 아버지 돈이 필요 없다. 능력이 없는 아들에게 아버지 재산을 헛되이 탕진하게 할 수도 없다”며 엄격한 자녀 교육관을 드러냈다. 이미 재산의 80% 이상을 기부한 버핏도 부자 아버지를 만나 평생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이 물려주는 건 자녀들의 성취감을 빼앗는 일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수백억 달러의 자산가인 게이츠 역시 가족 몫으로 1000만 달러만 떼어두고 모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잘 쓰는 일에 무게중심을 두는 아름다운 부자의 전범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부자상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재산의 대부분인 578억원을 KAIST에 기부한 한의학 박사 류근철씨가 그렇다. 뒤축이 찢어진 구두를 20년째 신고 구멍 난 내의를 입을 만큼 인색하면서도 교육 발전을 위해 선뜻 거액을 쾌척한 것이다. 그러나 부의 환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본인들이 결심한다 쳐도 유산 문제에 가족의 이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선진국에 비해 전체 기부액 중 유산 기증의 비율이 턱없이 낮다고 한다.

모두가 어려운 요즘이야말로 부자들의 희사가 절실한 때다. 금융위기 와중에도 버핏이나 게이츠 같은 미국의 부호들은 자선 활동을 더욱 늘린다는 소식이다. 부자가 존경 받는 건 재산의 크기가 아니라 베풂의 크기에 달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