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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노조 인정하면서 단체 행동권 금지는 잘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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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 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李政烈)판사는 공무원노조에 노동 3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며 집회 등을 연 혐의(지방공무원법 위반)로 기소된 전국공무원 노동조합(전공노) 소속의 奇모(42.기획차장)씨 등 23명에 대해 각각 벌금 10만~30만원에 선고유예를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선고유예는 범죄 사실이 경미하다고 판단될 경우 내리는 판결로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2년이 지나면 유죄판결 사실이 없어진다. 법원은 그동안 집회에 단순 참가한 전공노 조합원들에게 300만~4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해 왔다.

李판사는 판결문에서 "전공노 소속 공무원들이 현행 지방공무원법에 어긋나는 집단행위를 한 점은 인정된다"며 유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李판사는 그러나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노동조합뿐이라는 점과 허울뿐인 공무원노조 특별법의 입법 추진에 항의하려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의 선고를 유예키로 했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노동3권은 제헌 헌법에서는 보장됐지만,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가공무원법과 헌법이 개정되면서 박탈됐다"는 것이 李판사의 설명이다.

李판사는 또 "지난해 3월 행정자치부 장관이 공무원노조를 인정하겠다는 뜻을 밝히고도 노조의 핵심 권리인 단체행동권과 단체교섭권 일부를 금지하는 법률안을 추진한 것은 정부의 일방적인 입장만을 내세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이 법안의 국회 제출을 보류하도록 지시한 것은 피고인들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奇씨 등은 지난해 10월 17일 서울 영등포구청 주차장에서 공무원법 개정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는 등 집회를 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李판사는 지난 2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처음으로 무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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