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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에서 친 드라이브 샷이 스코틀랜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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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스코틀랜드에서의 화려했던 골프장 원정을 모두 마쳤다. 골프의 고향에서 맛 본 지독한 링크스의 참 맛! TV에서만 보았던 역사 속 골프장, 그 페어웨이에 뒷땅을 찍고, 벙커에 원 없이 흔적을 남기고, 러프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우리 골프 인생의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긴 스코틀랜드를 뒤로 한 채 우린 다시 잉글랜드를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에든버러를 떠나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멀리 스낵카 몇 대가 서 있는 휴게소 같은 곳이 보였다.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는 국도 양쪽에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좌판 수준의 매점이 있었고, 커피며 간단한 음료, 빵을 팔고 있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 왼쪽에는 붉은 십자가의 잉글랜드 국기가 그 반대편 도로 매점에는 푸른 바탕의 X자 모양 스코틀랜드기와 UK국기 Union Jack이 함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 접경이구나.

차를 세우고 보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듯말듯한 돌로 쌓은 방벽이 만들어져 있고, 이 곳부터 잉글랜드라는 국경 표석이 있었다. 함께 묶여 UK로 통칭되기는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엄연히 다른 두 나라였다. 비단 월드컵에만 따로 출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만난 스코티쉬들만해도 잉글리쉬와 자신들을 엄연히 구분하며 독자성을 과시했다. 그들은 잉글랜드 사람들을 ‘소심한 사람들’이라 표현했고, 자신들은 ‘강하고 외향적이며,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이라 했다. 영어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발음, 억양이 독특하고 들어보지 못한 어휘도 많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런 방언을 지극히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의회에선 끊임없이 스코틀랜드의 독립이 언급되고 있고, 화폐도 잉글랜드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물론 단위도 사이즈도 동일하고 잉글랜드에서도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한 화폐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화폐를 잉글랜드에서 내밀면 다들 생소해하며 한 번씩 뒤집어 보고, 스코틀랜드 여행은 어땠는지 물어오곤 했다.

정서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엄연히 다른 나라 두 나라, 하지만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국경에는 형식만 남았을 뿐 변경이라는 현실감은 없었다. 차의 속도가 조금만 빨랐어도 못 보고 지나쳤을 왜소한 표시만 남아있다.

접경 지역의 골프장을 경험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차로 돌아와 네비게이션 검색에 들어갔다. 행정적으로는 잉글랜드지만 바로 접경에 위치한 골프장이 하나 검색되었다. 자칫 OB가 심하게 나면 잉글랜드에서 친 드라이브 샷이 스코틀랜드로 넘어가버릴 정도로 경계선에 밀착한 골프장이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접경과 맞닿은 바닷가에 위치한 골프장 Magdalene Fields GC. 골프장이 위치한 마을 이름은 베르윅 업폰 트위드(Berwick upon Tweed)였다. 이 마을은 행정구역상은 잉글랜드지만 거의 스코틀랜드 출신의 켈트족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17세기 이후 이 곳의 행정구역은 무려 18번이나 바뀌었다고 하니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접경 다툼이 얼마나 치열했던 지역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근처 바닷가에 방갈로촌을 비롯하여 리조트가 들어선 모양새로 보아 꽤 유명한 휴양지인 모양이었다.

18홀 6,407yd Par72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최북단 골프장인 셈이다. 1903년 9홀로 문을 연 이 골프장은 1914년 18홀로 확장 공사를 시작하지만 재정 문제로 공사를 끝마치지 못하여 1916년 다시 9홀로 복귀했다고 한다. 1974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8홀이 완공되었고 현재의 레이아웃이 고정되었다.

골프장은 거센 바다 바람이 앞을 가로막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고, 골프장 수준에 비하면 가격이 턱없이 저렴하여 더 빛나는 골프장이었다. 1인당 20파운드였던가? 완전 심봤다~ 스코틀랜드에서 명문 골프장들을 골라 다닌 덕에 그린피며 숙박비 지출이 상상초월이었던 탓에 상대적으로 더욱 저렴하게 느껴졌다.

골프장은 대부분의 홀에서 바다를 볼 수 있었고, 거센 바람이 몰아칠 뿐 만 아니라, 굴곡도 심한 편이었다. 그러나 링크스라고 하기는 좀 뭣한, 바닷가에 위치한 파크랜드 형 골프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컸다. 무조건 바닷가에 있는 골프장을 링크스라 부르던 것이 불과 3개월 전이었건만 장족의 발전이다.

그러나 바람은 영락없는 링크스 수준이었다. 동반자는 바람에 몇 번이나 모자를 날려보냈고, 결국 모자를 돌려 챙을 거꾸로 쓰고 다녀야했다.

워낙이 둔한 몸치인 동반자에게서 좀처럼 힘든 날렵한 모습이 포착된 순간이었다.

비교적 넓은 페어웨이와 무른 땅, 파릇파릇한 양잔디, 벙커의 배치 등 전반적으로 보면 부드러운 여성적 코스지만 티잉그라운드에 서면 홀 별로 시야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절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다녀야 하는 드라이브 샷은 도전 정신 만땅 충전된 남성미가 물씬 풍겼다.

특히 8번 홀 티잉그라운드에 오르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 검은 해안 절벽이 볼을 삼키려고 입을 벌이고 있고, 그 입안에는 수 백 개의 볼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거리상으로는 그린 에지까지 160yd, 파3홀이었지만 워낙 바람이 계곡을 타고 올라오고 있어 두 세 클럽을 길게 잡아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홀 별로 닉네임을 붙여놓았는데 이 8번 홀의 닉네임은 'Good Luck' 이었다. 닉네임이 이보다 더 가슴에 와 닿을 수 있을까? 나머지는 하늘의 뜻이다 생각하고 드라이버를 잡고 힘껏 내질렀는데 다행히 계곡을 건너 그린 왼쪽에 생존했고, 동반자의 볼은 그린에 안착했다. 서로의 생존을 치하하며 먼 길 돌아 그린에 도착했다. 동반자는 내친 김에 버디까지 제조하며 진정한 Good Luck을 일궈냈다.

8번 홀 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12번 홀이었다. 어렵지는 않았으나 정말 신기한 페어웨이를 경험했다.

일명 '빨래판 페어웨이'라고…. 물론 우리가 지어준 이름이다. 할아버지 이마의 주름살처럼 자글자글한 주름들이 페어웨이 전체를 주름잡고 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이것을 'rolling fairway'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대략 주름의 간격은 5yd 정도로 전체 페어웨이를 주름잡고 있었다. 티잉그라운드에서 그린까지 온통 자글자글했다. 방향이 아무리 좋아도 세컨샷 어드레스는 99% 스텐스가 불안정할 수밖에….

우린 바람과 전쟁을 치르며 재미있는 라운드를 마쳤고 역시 영국에는 명문 골프장이 아니라도 숨은 보석 같은 골프장이 많다는 사실에 한 번 더 환호했다. 싸고 좋은 골프장을 만나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내친 김에 클럽하우스에서 스코틀랜드 전통 음식 하기스를 시켜 기네스를 한 잔 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하기스(Haggis)는 양의 내장을 잘게 다져서 곡물과 섞은 것을 양의 위장에 채워서 삶은 스코틀랜드 전통 음식이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스파이스를 듬뿍 사용한다는데 대개의 외국인들은 비위가 상해서 잘 못 먹는다며 레스토랑 아주머니가 걱정하셨다. 그러나 우린 비위 따위를 잊은 지 오래다. 음식의 재료나 생김새는 우리 순대와 흡사하지만 씹으면 입안에서 동글동글 구르는 곡물이 인상적이고 맛도 괜찮다.

음식까지 싸고 맛있었으며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두 친절했다. 사실 이름없는 골프장에 가면 이방인들은 오히려 환대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어디서 왔냐? 어떻게 알고 왔냐? 코스는 어땠냐? 오늘은 몇 개 쳤냐?” 특히 걸출한 켈트의 피가 흐르는 웨일즈와 스코틀랜드에서는 더더욱….

이쯤 되니 도저히 이 곳을 떠나고 싶은 맘이 없었다. 우린 이 곳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한 번 더 라운드를 하기로 결의했다. 내일 라운드는 아예 카메라 전원을 꺼 버리고 스코어에만 신경 쓰기로….

생각해보니 간만에 편안한 골프장에서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마음 놓고 즐기고 마실 수 있었던 것 같다. 덕분에 우리의 유랑 생활 중에 유일하게 이틀 연속 같은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한 기록이 남았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