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대로는 수습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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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보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든 느낌이다.검찰 중수부장이 앞으로 수사가 크게 진전될게 없으니 더 이상큰 기대를 걸지 말라는 주문까지 하고 있다.과연 이런 식으로 수사를 마무리지어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밝혀낸 결과는 여권쪽에 전 청와대 총무수석 홍인길(洪仁吉)의원과 내무장관.국회재경위원장 등과 국민회의의 권노갑(權魯岬)의원의 뇌물수수 혐의가 고작이었다.과연 이 사람들이 수조원 은행대출의 배후였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번 사건도 과거 권력형 비리사건처럼 흐지부지 마무리되고마는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치 않을 수 없다.91년 수서사건 때도 권력핵심의 관련설에도 불구하고 검찰은뇌물받은 의원 몇명과 청와대비서관 한명을 구속하 고 속전속결로사건을 끝냈다.뒤이어 전면개각단행,대통령사과 담화문으로 정치적인 마무리를 지었다.우리는 그같은 결과가 결국은 임기후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구속으로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일깨우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검찰수사는 국민의 의혹을 풀어주기는커녕 의심만 더커지게 만들었다.먼저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정권의 핵심인물들이제기하고 있는 수사의 의문점부터 풀어야 한다.구속된 洪의원은 스스로를 깃털에 불과하다고 하고,여당 대통령후 보를 꿈꾸는 핵심중의 핵심인 김덕룡(金德龍)의원은 음모설을 제기했다.그들 입에서“마녀사냥식 수사”“시나리오 수사”라는 말까지 나왔는데 이들을 달래서 덮는다고 덮어질 수 있겠는가.
검찰의 수사방향도 문제다.지금 구속된 배후인물들은 모두 정치권인사다.이들이 설령 대출부탁을 했다 해도 주변인물에 불과하다는 것은 은행생리를 잘 아는 검찰 자신이 잘 알 것이다.사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코렉스공법채택 등 제철소 인. 허가 과정과거액의 대출이 어떻게 이루어졌느냐는 점이다.물론 검찰이 행정부정책의 과오까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지만 그 결정과정의 불법성에대해서는 수사하지 않고 정치인의 뇌물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수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수사의 의문점에도 분명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한보대출의 처음 고리가 되고 있는 이형구(李炯九)전산은(産銀)총재가 검찰에서 金대통령의 관련설까지 진술해 풀려났다거나,대통령 차남 현철(賢哲)씨가 당진 제철소를 두번이나 방문한 증거를 갖고 있다는 주장 등은 그대로 넘길 일이아니다.이런 의혹들이 분명히 정리되지 않고는 팽배한 국민의 불신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검찰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원로들이 시국성명에서 지적했듯 金대통령이 진퇴(進退)를 건 결단으로 성역없는 수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야당이 지적하고 있는 현철씨에 대한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피해선 안 된다.그것이 사리 와 형평에도맞고 루머를 잠재우는 첩경일 것이다.
이번 수사를 미봉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난 사태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다음주부터 있을 국회 국정조사에서 여야 정치권의 충돌은 말할 것도 없고,3월부터 춘투(春鬪)등과 어울린 학생들의 소요 등 나라 전체가 기둥째 흔들릴 위험 마저 있다.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파국은 정권의 위기일뿐 아니라 체제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사태수습을 위한 金대통령의 애국적 결단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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