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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당선이 다행스러운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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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는 무작정 오바마를 찬양할 생각은 없다. 그의 행보가 항상 옳은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수만 대의 한국산 차량을 미국에 수출하는데, 우리는 고작 4000~ 5000대를 한국에 들여놓고 있다”는 주장에는 한마디 묻고 싶어진다. “한국에서 미국 차보다 유럽 차, 일본 차가 잘 팔리는 것이 공정무역의 산물이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기간 그의 발과 말을 좇으면서 내가 가진 느낌은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다행스럽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요인보다도 나는 오바마가 피해의식과 분노를 자양분으로 성장한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 너무나 반갑다. 굴절된 그의 시각이 미국 사회에,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11월 4일 밤 승리를 확인한 뒤 지지자들 앞에 선 오바마가 활짝 웃는 얼굴로 “헬로, 시카고!”라며 연설을 시작했을 때 나는 가슴을 졸였다. 그의 눈앞에 얼마나 많은 과거의 역경들이 떠올랐을까.

아홉 살의 오바마는 피부색을 하얗게 만들려고 화학수술을 받다 실패한 흑인 노인의 사진을 본 뒤 벌거벗은 채 거울 앞에 서서 절규한다. “내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다 미쳤다.” 여섯 살 때부터 4년간 양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오바마가 본 현실은 ‘자동차를 24대 소유한 부자 장군 바로 옆집에 못 먹어서 배가 볼록 나온 아이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연설에서 미국 사회, 가진 자, 부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나 피해의식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직도 미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힘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그 해답이 나왔다”고만 의미를 부여한 뒤 줄곧 ‘미 합중국’의 앞날을 이야기했다.

오바마는 분노와 자괴감으로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대신 컬럼비아대학과 하버드 로스쿨에서 실력을 쌓고, 시카고 빈민가에서 현실을 배워 나갔다. 시카고를 찾은 지 23년 만에, 선거 정치에 참여한 지 12년 만에 그는 자신의 신념을 이루는 데 가장 필요한 자리를 얻었다. 오바마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 양쪽 모두에 포진해 있다. 흑인 민권운동의 연장선에서 대통령 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오바마를 까만 쿠키 사이에 흰 크림을 넣은 과자 ‘오레오’에 빗댄다. 흑인 민권운동에서 자유로웠고, 흑인 노예의 자손도 아닌 오바마는 ‘무늬만 흑인’일 뿐이라는 혹평이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으론 24살의 오바마가 뉴욕의 다국적 컨설팅 회사를 뛰쳐나와 시카고 흑인 빈민가로 들어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일부 보수 진영 사람은 “지금은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통합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흑인 정서에 편향된 국정운영으로 분열을 조장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들의 시각 역시 오바마가 최고 수재들이 모인 하버드 로스쿨 재학 당시 진보와 보수가 양립한 법률 학술지 ‘하버드 로 리뷰’의 첫 흑인 편집장으로 선출된 까닭을 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기대한다. 오바마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방식대로 앞으로도 살아간다면, 미국 사회가 분열보다 통합의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거라고. 오바마 당선 후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사회는 공정하고 고귀하다’는 흑인들의 인식이 18%에서 42%로 껑충 뛰어올랐다. 나는 미국의 흑인 사회에도 변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보고 싶다.

김정욱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