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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준비된 그들 위기가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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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아무리 어려워도 살 길은 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차별화된 아이디어와 마케팅으로 승부하는 기업들, 해외시장을 꾸준히 공략하는 기업들은 위기 속에서 오히려 빛을 발한다. 전통 제조업과 유통·서비스업에서 선전하는 기업들의 비결이 뭔지 들여다봤다.

백화점“이참에 체질 개선”… 상품 개발 직접 나서

롯데백화점은 서울 본점과 잠실점에 이탈리아 캐주얼 상표인 ‘GAS’(가스)를 들여놨다. 글로벌 패션 부문에서 1년간 이탈리아를 오가며 발굴했다. 롯데는 이런 브랜드를 9종 출범시켰다. 해외에서 제품을 사오고, 판매·재고관리를 직접하는 ‘직소싱’ 방식이다. 김만기 이사는 “입점료로 매출을 채우는 ‘천수답 시대’는 지났다. 롯데만의 브랜드를 자체 개발하거나 단독 수입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경기는 체질 개선의 기회다.

신세계백화점은 ‘자주 편집숍’을 늘려 10개에 이른다. 바이어가 상품을 기획하고 매장을 손수 관리한다. 이 분야 매출 신장률은 45%로 백화점 평균 14%를 훨씬 웃돌았다. 박찬영 상무는 “영업이익률이 일반 임대매장보다 10% 정도 높다”고 전했다.

현대백화점은 국내 디자이너와 함께 해외에 나가 의류를 생산한다. 지난달 말부터 몽골에서 캐시미어 옷 ‘소롱고’를 만들어 국내 매장에 들여놨다. 염지훈 여성 정장 바이어는 “로열티·유통비를 아껴 정상 판매가보다 30% 정도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백화점이 단독으로 들여온 브랜드를 경쟁사 매장에 파는 ‘적과의 동침’ 현상도 나타난다. 현대가 지난해 2월 출시한 미국 캐주얼 브랜드 ‘쥬시꾸띄르’는 최근 롯데 본점과 갤러리아에 입점했다. 현대는 이 브랜드 본사와 국내 단독 공급 계약을 해 다른 백화점에서 팔 때 판권료를 받는다. 롯데가 지난해 들여온 이탈리아 핸드백 브랜드 ‘훌라’는 10월 현대 서울 신촌점에 둥지를 틀었다.

문병주 기자


게임 80개국에 수출 … 로열티까지 ‘일석이조’

게임업계가 라이선스를 임대해주고 받는 ‘로열티’ 수입이 짭짤하다. 게임산업의 해외 수출은 올해 처음 10억 달러 돌파가 확실시된다.

예당온라인은 2일 제45회 무역의 날에 3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오디션’ ‘프리스톤테일 1, 2’ ‘에이스온라인’ 같은 게임을 80개국에 수출해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총 3436만 달러 수출을 한 것. 수출액 중 절반은 해외에 라이선스를 빌려주고 받은 로열티 수입이었다.

김남철 대표는 “내년엔 신작 ‘패온라인’과 ‘오디션2’를 해외에 출시해 5000만 달러 이상 수출하겠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는 3분기까지 ‘리니지’ ‘리니지2’ ‘길드워’ ‘시티오브히어로’ 등의 게임 로열티로 148억원을 챙겼다. 70여 개국에 게임을 수출해 올 1~3분기 매출 2205억원 중 42%를 해외에서 거뒀다. 미래에셋증권의 정우철 연구원은 “엔씨소프트의 최근 출시작 ‘아이온’의 중국 서비스 계약이 체결돼 3년간 300억원 이상의 로열티 수입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CJ인터넷도 신작 ‘프리우스’ 등을 앞세워 3분기까지 396억원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엔도어즈와 그라비티는 각각 300억원과 227억원의 매출을 해외에서 거뒀다.

최규남 한국게임산업진흥원장은 “게임 수출은 전자제품과 달리 원자재나 기술을 외국 업체에 의존하지 않아 외화가득률이 높고 요즘 같은 환율상승기에 수익이 더 빨리 증가한다”고 말했다. 

최익재 기자


가구 빅5 “잘하는 것에 집중” … 모두 흑자 행진

‘역시 기본에 충실해야-’. 불황 속에도 선전하는 중견 가구업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샘을 비롯해 리바트·에넥스·퍼시스·보루네오 등 5개 대형 가구업체는 올 들어 3분기까지 모두 흑자를 냈다. 대부분 매출과 영업이익도 꾸준히 늘었다. 연초부터 원자재 값이 급등하고 하반기 들어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친 뒤 많은 중견 업체가 수렁에 빠진 것과 대조적이다.

최양하 한샘 부회장은 “가구업체들 나름의 장기를 살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탄탄한 브랜드 이미지를 바탕으로 부엌가구와 인테리어 가구에 주력했다.

퍼시스는 사무용 가구에, 리바트는 건설사 상대의 특판에 힘을 쏟았다.

이들 업체의 위기 극복 원동력은 연관 분야 다각화에서도 나온다. 경규한 리바트 사장은 “가구업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겪은 뒤 문어발 확장을 자제하고 핵심 사업에 투자를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를 테면 한샘은 부엌가구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인테리어 가구 쪽에 진출해 성과를 냈다. 리바트는 특판에서 쌓은 영업력을 살려 선박가구에 손을 댔다. 사무용 가구의 강자 퍼시스는 학생·교구용 가구로 연관 다각화를 했다.

혁신과 공격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가구업계는 2003년 이후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이에 대응해 핵심 사업을 강화하고 신규 사업에 투자하며 체력을 키웠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종연 연구원은 “체질이 강한 기업은 주력 제품에서 입지를 다진 뒤 인접 시장에 진출해 성공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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