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잡아 돈뜯기' 드러난 國疳 뒷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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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정감사는 의원들이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한 수단이다'라는 명제가 한보게이트 수사과정에서 또한번 사실로 입증됐다.11일 구속된 신한국당 정재철(鄭在哲)의원의 영장내용은 이같은 뒷거래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국정감사와 관련해 국민회의 소속의원들이 한보그룹의 여신 및담보현황등에 관한 자료제출을 정부에 요구함.물의가 예상되자 권노갑(權魯岬)의원을 통해 이를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정태수(鄭泰守)로부터 현금 1억원을 받았음.' 물론 아직은 수사단계라 이를 기정사실화하기 어렵겠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때 특정기업의 약점을 잡아 해당기업으로 하여금 로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은 그동안 정치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매년 국정감사때가 되면 의원회관 주변은 피감(被疳)기관과 기업에서 파견한 정보수집가들로 북적댄다.어떤 의원이 무슨 자료를 요구하는지를 미리 알아내기 위해서다.이렇게 수집된 정보중 해당기업 입장에서 공개돼서는 안될 치부나 정부의 인 .허가 과정에 나쁜 영향을 미칠 내용이 끼어 있으면 의원과 기업간에 은밀한 거래가 시작된다.그리고 이 거래가 성립하면 의원은 실제 질의과정에서 해당기업 부분을 생략한다.P전의원은“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은 노골적으로 자신이 요구한 자 료목록을 기업에 흘리기도 한다”고 했다.
특히 이번 鄭의원의 혐의를 보면 이같은 뒷거래가 반드시 의원과 기업간 직거래 형태를 띠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영장에는 질의무마를 위해 한보가 정태수→정재철→권노갑→?의원'의 4단계 과정을 밟은 것으로 돼 있다.중간에 2명의 중개역을 동원한 것이다.
한 야당보좌관은“중개역은 당 중진이나 계파 보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은 야당의원이 어떻게 여당의원의 돈을 받을 수 있느냐고 의문을 표시할지 모르나 정책적.전략적 대결이 아닐 때는 여야 의원은 같은 국회의원으로서 동료다.
개인적 친분관계도 작용해 아무래도 돈마련이 쉬운 여당쪽에서 야당쪽으로 자금이 건네지는 것은 오랜 관례다.
국민회의 權의원이 12일 검찰에 출두함에 따라 이제 관심은 95,96년 국감때 한보관련 자료를 요구한 의원들이 누구냐에 집중된다.검찰은 이미 국회로부터 의원들의 자료요구목록과 속기록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때문에 이를 거꾸로 추 적하면 정치자금 행방의 일부가 드러날 수도 있다.국회자료를 입수해 분석해본 결과 95,96년 한보관련 자료를 정부에 요구한 의원은 모두 13명.모두가 재경위 및 통산위 소속으로 여당 4명,야당 8명,무소속 1명이었다.
95년의 경우 재경위 소속의원중 당시 민자당 N.P의원,국민회의 K.L의원,신민당 L의원등이 포함됐다.이들은 산업.주택은행에 대부분.한보철강공업 에 대한 대출현황'이라는 제목으로 자료를 요구했다.
통산위에서는 국민회의 Y,무소속 S의원이.한보의 아산만발전소건설계획'.한보그룹의 석탄공사 인수계획'을 각각 요구했다.
15대 총선 이후인 지난해에는 재경위에서 야당 소속 J의원만이.한보철강공업에 대한 대출내역'을 역시 산업은행에 요구했다.
반면 통산위에서는 국민회의 K.J,신한국당 K.P,자민련 K의원이.한보의 러시아 이르쿠츠크 가스전개발사업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특이한 것은 자료제출을 요구한 이들 의원이 막상 질의때는 한보부분을 하나 같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또 자료제출을 요구받은 기관중 산업은행은.별도 제출'이라는 회신을 보냈다. 이에 대해 국민회의 L의원등은“자료를 요구했다고 해서 모두 질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이번 한보사태와 무관함을 강변했다.반면 일부 의원은“다 알면서 뭘 그러냐”며 곤혹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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