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덕의 13억 경제학] “맨 땅에 헤딩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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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관련주'. 우리나라 증시에 상장된 업체 중 중국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종목을 뜻합니다. 철강 조선 기계 해운 등이 대표적인 중국관련 종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에 사업노출이 많은 기업들이 중국관련주로 분류됩니다.

중국관련주 중에서도 가장 중국경제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업이 바로 두산인프라코어입니다. 굴삭기 지게차 등을 만드는 종합 기계업체입니다. 산둥성 옌타이(烟台)에 공장을 두고 있고, 중국 전역 10여 곳에 판매자회사를 깔아놓고 있습니다.

이 회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현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P씨가 주인공입니다.

지난 96년 봄 대우중공업시절(이 회사는 2005년 두산에 인수됐습니다). 박 지점장에게 산시(山西)성 굴삭기 시장을 개척하라는 임무가 떨어졌습니다. 그룹 내 모든 사업을 중국시장으로 옮기라는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의 독려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는 즉각 산시성 성도인 타이위안(太原)으로 달려갔습니다. 그에게는 별다른 정보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지도 한 장과 제품 카타로그가 전부였습니다. ‘맨 땅에 헤딩한다’는 식입니다.

영업이 잘 될 리 없었습니다. 전화번호부에서 알아 찾아간 건설장비 업체는 공작기계 한 두 대를 놓고 공장을 운영하는 허름한 업체일 뿐 번번이 영업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피곤한 몸으로 점심식사를 하던 그는 창밖에 지나는 15t급 트럭을 봤습니다.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게 있었습니다. 트럭이 분명 건설공사장으로 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지요. 그는 숟가락을 내팽개치고 뛰쳐나와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트럭을 쫓았지요. 그는 예상대로 서너 대의 굴삭기가 일하고 있는 공장현장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현장 감독에게 굴삭기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판촉활동을 벌였습니다. 그 정성에 감복했는지 현장 감독은 나에게 굴삭기 살 만한 업체들을 소개시켜주었습니다. 중국 굴삭기 영업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P씨는 당시 상황을 그렇게 회고합니다. 그렇게 우리나라 굴삭기는 중국시장에 진출하게 됩니다.

대우중공업은 2년 여 동안의 시장개척 시기를 거쳤고, 98년부터 현지에서 굴삭기를 생산하게 됩니다. 굴삭기가 생산되기 전 대우중공업은 이미 중국 내수시장 유통망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생산하기 전에 유통망을 구축하라'라는 평범한 중국비즈니스 격언을 지킨 겁니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내 시장점유율은 약 20%. 굳건하게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맨 땅에 헤딩했던 '맨발의 청춘'들이 이룬 결실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중국 각지에서 맹렬히 뛰고 있습니다.

중국이 금리를 내리거나, 경기부양 정책을 실시한다는 등의 뉴스가 나오면 이 회사 주가는 여지없이 뜁니다. 회사 전체 매출중에서 약 20%가 중국에서 나오니까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상장사 전체가 중국관련주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상장사 중 중국과 비즈니스가 없는 업체는 거의 없을 테니까요. 상장기업 전체 영업이익의 15%정도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 상장사는 모두 중국관련주'라는 말이 나올 법합니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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