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고장 난 민주당이라는 날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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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쟁이 주는 감동은 승패가 갈린 뒤에 더 선명하다. 오바마의 정치는 경쟁이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정책과 이념이 맞부딪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경쟁자를 인간적으로 미워해선 안 되며, 뒤끝이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성미 급한 사람들은 또 이명박과 박근혜 얘기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게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 노트북의 타깃은 시대와 리더에 따라 이름이 바뀌어 왔지만 이 나라의 전통 있는 제1야당, 민주당 얘기다.

한 여론조사 기관에서 자료를 보내왔다. 11월 20일에 했다는 여론조사다. 민주당 지지율은 16.7%로 한나라당의 절반이었다. 충격적인 건 차기 대선 주자 인기도였다.

박근혜 의원이 1위를 차지한 건 예상대로다. 나머지 57%를 7명의 인물과 ‘기타’가 차지했다. 민주당 현역 정치인 중에선 아무도 끼지 못했다. 낙선한 야인이거나 선거에 불출마한 정동영, 손학규, 강금실씨가 각각 3위, 4위, 7위였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왜 낮을까. 응답률은 “무조건 비판만 해서”가 가장 많았고,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란 대답과 “스타 정치인이 없어서”가 그 다음이었다.

야당은 국민의 꿈을 먹으며 내일을 기약하고, 국민은 그런 야당을 통해 현재 권력에 대한 불만을 삭이는 게 대의정치다. 그런 야당이 없다고 대답하는 국민이 이토록 많다는 건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보는 눈은 다 같다. 정권을 빼앗겼다는 판정을 받고 난 뒤 지난 11개월 동안 민주당의 정치에서 나는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했다.

정부·여당의 정책이 발표됐을 때 민주당의 반응을 예상하기란 너무나 쉬웠다. 대부분 반대였으니까. 반대의 관성은 비리 의혹에 연루된 당 최고위원을 보호하기 위해 사법기관과 맞서는 데로 이어졌다. 의원 총회에선 “(실체도 불분명한)선명 야당”을 부르짖는 강경파의 목소리에 대안론자들이나 협상론자들이 기를 못 폈다. 야당 경험이 10년이나 되는 한 의원은 “가봐야 결론이 뻔하다”며 그런 의원 총회를 외면하고 있다. 새로움이 없으니 감동이 없고, 감동이 없으니 인물도 눈에 띄지 않을밖에….

정세균 대표의 변신이 아쉽다. 그는 열린우리당 의장 시절 소수의 강경파들을 다수의 합리파들로 하여금 제압하게 하는 수완을 여러 차례 발휘했다. 그때 한 걸 지금 안 하는 건 정치적 욕심의 크기 차 때문이 아닐까. 합리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원혜영 원내대표는 자신의 목소리를 키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도부가 변해야 당이 바뀐다.

당장 정쟁의 둑에 갇힌 민생법안의 물길부터 열어줘 보라. 예산안도 어느 세목을 얼마나 조정하면 통과시켜 주겠다고 포지티브 방식으로 반대해 보라. 정 안 되면 정권교체의 뜻이라며 차라리 다리를 들어라. 반대보다 더 선명한 투쟁이 찬성임을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다. 한 줌 참모들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말고 강호의 기인이사들을 찾아보라. 그리고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3박4일이고 5박6일이고 밤을 새워 당의 정체성, 진로를 결정하는 끝장 토론을 해보라.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한국 정치도 날개 하나가 고장 나면 날 수 없다.

박승희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