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과 한보사태 여파로 기업들까지도 설 경기 썰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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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불황과 한보사태 여파로 웬만한 기업들까지도 직원들의 설 선물을 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예년의 경우 상여금은 못주더라도 선물은 챙기는 회사들이 많았으나 불황에 따른 매출부진과 한보사태로 돈을 빌리기 어려워진 탓이다. 그래서 명절때면 회사에서 준 선물 꾸러미를 덤으로 들고 고향에 가던 쏠쏠한 맛도 사라져 가고 있다. 대구 C주택은 지난해까지 명절때마다 식용유 세트(1만5천원짜리)를 1백50여 사원에게 나눠줬으나 올해는 아예 없애 버렸다. 게다가 3백여개 하청업체에도.선물을 주고받지 말자'는 내용의 편지까지 일일이 보냈다. 회사측은“사원들에겐 미안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대구 Y상사도 지난해 설에는 20명의 사원이 선물을 살 수 있도록 10만원권 상품권을 지급했으나 올해는 영업실적 부진을 이유로 이를 주지 않았다. 이 회사 朴모(48)사장은“사원들의 사기를 생각해 선물 지급문제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으나 돈을 빌려서까지 주기는 어렵다”며 답답해 했다. 또 S건설은 매년 설.추석때 빠지지 않고 참기름.참치.김세트등을 선물했으나 이번에는 취소했고,기계제작업체인 대구 D공업도지난해 7만원짜리 구두티켓을 사원 1천2백명에게 나눠 주었으나역시 취소하는등 많은 업체들이 선물을 주지 못 하고 있다. 이같은 사정은 백화점 경기에서도 잘 나타난다. 백화점의 선물세트 판매 담당부서인 특판과마다“지난해 설때보다30%이상 판매실적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덩달아 울상이다. 부산 태화쇼핑은“예년에는 5만.10만원짜리 상품권이 설1주일전부터 하루 1억원어치이상 팔렸으나 올해는 3일의 4천8백여만원어치가 최고였을뿐 나머지는 하루 3천만~4천만원에 그쳐최악의 불황”이라고 밝혔다.매장도 썰렁하다. 부산 롯데백화점 특판부도“기업의 단체주문이 거의 없어 5일 현재 매출규모가 2억5천3백여만원에 그치고 있다”며“이같은 액수는 지난해 추석 전체 매출액 7억원의 36% 수준”이라고 밝혔다. 대구백화점 관계자는“판매실적이 떨어질 것으로는 예상했으나 이렇게까지 줄어들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철강.신발.조선.기자재등 8개 업종 제조업체각 7곳씩 모두 56개 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38개 업체는 예년보다 1만~2만원이 싼 2만~5만원짜리 선물을 주지만 나머지 업체는 선물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대구=허상천.홍권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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