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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돈줄 풀게 하려면 정부가 직접 증자 나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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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호 10면

신현송(사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국내 은행의 대출 여력을 높이려면 정부가 후순위채 매입 방식으로 은행권을 지원하는 것보다 보통주 증자를 통해 은행의 자기자본을 확충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공적자금을 은행에 직접 투입해 은행 지분을 확보하고 은행의 부실 여신을 매입한 바 있다. 국내 은행들은 대출 여력을 높이기 위해 7% 이상의 고금리 후순위채를 발행하고 있지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만 높였을 뿐 대출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금융위기 전문가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

신 교수는 유동성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선 가계 대출이나 기업 대출 같은 은행 대차대조표상의 자산 항목만 보지 말고, 비은행 부문에 대한 부채(예금 등)와 자기자본과 같은 부채 항목의 안정성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재무부로부터 큰돈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며 “이는 사실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구분이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앙은행이 정부 돈을 받은 것은 FRB가 독립된 중앙은행으로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며 “그런 자신감을 가진 중앙은행이 세계에 몇 개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행의 입장도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한국은행이 관련 법률 미비 등으로 FRB처럼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처하기엔 제약이 많다.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은 시장 정보를 얻고 시장에도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감독기관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긴급 상황에선 한은도 큰 안목에서 보다 과감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경직된 인플레이션 목표제에서 해방된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신 교수는 “앞으로 은행업과 자본시장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본시장에 맞춘 효과적인 금융감독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금융 발전의 혜택을 누리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했다.

국내 금융과 국제 금융을 쪼개 놓은 현 감독체계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은행 감독 권한은 금융위와 금융감독원, 환율정책 권한은 기획재정부가 나눠 맡고 있다 보니 키코(KIKO·환헤지 금융상품) 문제를 놓쳤고, 한은 통화정책과의 연관성도 결여돼 유동성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기도 했다. “금융은 중개 역할을 하는 실물경제의 하인이다. 금융 부문의 급성장은 거품을 키우고 경제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금융 비중이 큰 나라는 금융 사이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촉발점이 된 것도 시장 위주의 금융제도 탓이다.”

신 교수는 미국 금융 시스템이 은행 위주에서 시장 위주로 탈바꿈했고 이 과정에서 증권 부문 금융회사, 즉 투자은행(IB)의 성장이 두드러졌다고 봤다. 이번 미국 경제위기를 촉발한 것도 이런 IB의 과도한 성장 탓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IB들은 초단기 자금을 빌려 10년짜리 주택모기지 등을 증권화한 상품에 투자했다. IB의 성장 속도는 일반 상업은행의 10배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택가격 하락으로 거품이 급속도로 꺼지면서 위기를 불렀다. 그는 IB의 전성기를 ‘30년짜리 거품’이라고 꼬집었다.

신 교수는 강연 하루 전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는 주택시장이 안정돼야 살아날 수 있다. 일러도 2010년은 돼야 미국 주택시장이 바닥을 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언론 인터뷰 주요 내용.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10년 전처럼 금리를 올릴 필요는 없다. 금리를 올린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자가 되돌아오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제 사정이 급해 팔고 나가는 것이지 한국 자산이 덜 매력적이어서 팔고 나가는 게 아니다. 결국 외환시장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원화 유동성 공급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즘 원화 값이 폭락한 것은 금융회사와 달러 부채 기업이 헤징을 하기 위해 달러를 많이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화라도 충분히 공급해 준다면 기업 자금 사정이 좋아지고 급하게 달러를 찾는 수요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같은 구조조정도 필요 없다. 그때는 기업의 과도한 부채와 은행 건전성이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위기는 은행권 자산과 부채 만기의 불일치에서 온 유동성 위기다. 12월 말은 전 세계 유동성이 고갈되는 시기다. 이때 세계적인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시기를 잘 넘기려면 지금 서둘러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한국 시장에 유동성이 충분히 공급되고 실물에 대한 충격을 줄일 수 있으면 한국 경제는 연착륙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자기자본으로 충당한 부실은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 금융 부실은 더 커진다. 그러나 대공황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각국의 보호무역정책으로 무역이 급감하고, 미국이 거시정책을 펴면서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대공황은 없다. 한국의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희박하다.



신현송 교수는
1959년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영국 사우샘프턴대 및 런던정경대(LSE) 교수를 거쳐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미국의 금융위기를 예측해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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