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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같은 유통 시스템이 작가 잡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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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올해 팔순잔치를 치른 미키 마우스. 오늘도 사람들은 TV에서, DVD에서, 동화책에서, 그리고 캐릭터 숍에서 그의 모험을 즐기고 그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사입는다.

무궁한 생명력을 지닌 문화콘텐트의 힘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창작자가 심혈을 기울인 문화콘텐트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쉽게 즐기고 있을까. 

◆온라인 만화 ‘대여’에서 ‘구매’로=7600억원(2007년 기준)에 이르는 국내 만화시장에서 가장 높은 성장세를 보이는 곳은 온라인 만화. 2006년이래 매년 14% 정도씩 늘어나고 있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 만화코너의 주간 방문객은 300만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만화가들의 주머니 사정은 좀 나아졌을까. 한국만화가협회 신경순 사무국장은 “작가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여전히 아주 작다”고 말한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미 출판된 만화를 불법 스캔해(디지털파일화) 유통하는 것이다. 이 시장 규모가 연 430억 원(2007년 기준)에 달한다. 

합법적인 유료 시장이 성장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 오프라인에서 작가들의 창작욕에 찬물을 끼얹던 ‘대여’ 문제가 고스란히 옮겨왔기 때문이다. 대여점에서 싸게 만화책을 빌려봤던 이들은 이제 인터넷에서 만화를 1회 ‘열람’ 한다. 신 사무국장은 “만화는 빌려본다는 인식 때문에 열람 가격이 너무 낮게 책정돼 있다”고 말한다. 

포털 측도 할 말은 있다. 네이버 노수진 홍보과장은 “만화는 ‘고객 서비스’ 차원일 뿐”이라고 말한다. 수익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복잡한 유통과정에 있다. 포털과 창작자 사이에는 출판사뿐 아니라 만화를 디지털화하고 온라인서비스를 지속하게 하는 중간유통업체 CP(content provider)가 있다. 이들은 연예기획사처럼 작가를 관리하기도 한다. 수익이 나면 보통 포털이 40%(업계기준)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출판사, CP, 창작자가 나눈다. 수익배분 비율은 비밀이다. 김락균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만화애니캐릭터팀장은 “포털에서 CP에 선금으로 돈을 지불하는 경우가 많은데 추가수익이 날 경우 수익이 제대로 배분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신 사무국장은 “작가들은 포털과 직접 계약을 맺고 싶어하지만 진입 장벽이 높아 어쩔 수 없이 CP와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문광부는 온라인 ‘대여’를 ‘판매’로 바꾸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김 팀장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작품을 올리고, 소비자들은 만화파일을 소장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 위해 기술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불필요한 유통마진을 줄이겠다는 말이다.  

◆길 잃은 애니메이션, 탈출구는=주로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을 통해 유통되는 국산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에게 언제, 얼마큼 노출되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2005년 7월부터 국산 신규 애니메이션을 방송시간의 1% 이상 의무 방영하는 총량제가 실시됐다. 하지만 대부분 시청률이 2%에 못 미치는 오후 4시 부근 시간대에 배치된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 이교정 전무는 “당장 광고수익이 없다는 이유로 숨통을 막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방송사 입장은 다르다. KBS 김창조 편성기획부장은 “아이들은 반복해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신작을 의무적으로 방영해야 하니까 ‘대박’기미가 보여도 다시 보여주기 어렵다”고 말한다. EBS는 애니메이션 ‘뽀로로’를 전략적으로 노출해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는 어린이·청소년 프로그램이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교육방송의 특수성 덕분이다.  

유인촌 장관은 총량제 대상을 뉴미디어로 확대하고 방영시간을 프라임시간대(평일 오후 5시 이후, 주말 오전 8시~9시)로 옮기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캐릭터, 소비자와 낯 익히기 필요=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가 인기를 끌면 등장 캐릭터도 자연히 인기를 얻는다. 캐릭터 상품 유통의 40%를 차지하는 대형할인마트에선 이런 캐릭터만을 사들인다. 영세 캐릭터 제작업체들이 온라인 쇼핑몰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이에 문광부는 내년 1월 기존에 있던 대형온라인쇼핑몰 안에 ‘문화콘텐트몰’을 열어 영세업체들의 입점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어린이 대공원에는 ‘캐릭터 테마관’을 만들어 국산 캐릭터 상품을 전시하고 사고 팔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했다. 이와함께 해외수출을 돕기 위해 해외문화원 등에 ‘코리아센터’를 열기로 했다. 잘 만들어진 캐릭터를 두고도 판매통로가 없었던 영세 업체들이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한국문화콘텐츠라이센싱협회 최승호 협회장은 “아직 캐릭터 상품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게 사실”이라며 “아이디어가 담긴 캐릭터 상품을 모아 전시하는 안테나숍 같은 것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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