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作을찾아서>임영조"귀로 웃는 집".황충상"무명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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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성실하고 겸손한 자기 극복의 과정이 곧 자기 중심으로 드는길이다'. .승속(僧俗).선악의 차별을 두지 않으면 중생도 부처의 반열에 든다'. 한 시인과 한 작가가 각기 이같이 믿으며 일상의 삶 속의 깨우침,홀연 선(禪)적인 경지가 보일듯도 한 시집과 소설집을 각각 냈다.시인 임영조(任永祚.52)씨는.귀로 웃는 집'(창작과비평사)을,작가 황충상(黃忠尙.48)씨는.무명초' (작가정신)를 최근 펴냈다. “눈 오다 그친 일요일/흰 방석 깔고 좌선하는 산/아무리 불러도 내려오지 않으니/몸소 찾아갈 수밖에 딴 도리 없다/가까이오를수록,산은/그곳에 없다,다만/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로 남아/오랜 침묵으로 품(品)을 세울 뿐/어깨는 좁고 엉 덩이만 큰 보살/도량이 워낙 넓고 깊으니/나무들은 제멋대로 뿌리를 박고/별의별 짐승까지 다 받아주는/이승의 마지막 대자대비여!” 7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이래 任씨는 지금까지 세권의 시집을 펴내며 일상적 삶에 밀착된 쉬운 시어와 맑고 적확한이미지.비유등으로 시단의 주목을 받아왔다.이번 네번째 시집에서그는 구차한 우리네 일상도 곧 극락이요 천국임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허세나 위엄을 떨지않는 그저 우리네 일상적 언어로 자연스럽게. 위의 시.겨울 산행'일부에서 보는 바와 같이 任씨에게 있어서삶과 시와 도(道)는 따로 떨어지지 않고 한데 어울려 논다.눈내리는 산을 바라보니 마치 좌선한 보살 같다.해서 책상머리에 앉아 그런 산의 그윽한 경지를 시화(詩化)하려 하나 도무지 안돼 직접 그 산을 오른다.자신이 산만큼만의 삶을 가지고 산을 올라 붙잡은 그 대자대비의 자연,그 도에는 인간의 체취가 물씬풍기고 있다. 보살산(山)은 산의 모습대로 어깨가 좁고 엉덩이만 크다는,너무도 인간적인 해학을 곁들이며 저 세상의 것으로만 여겼던 도를이 세상으로 데려온다. 8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黃씨는 지금까지 50여편의 단편과 3편의 장편을 발표하며 불교적 세계를 심미주의적시각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이번에 출간된.무명초'에도.심미적 불교소설'로 불릴 수 있는 단편 7편이 실렸다. 환속(還俗)해 결혼생활 10년을 맞는 소설가 주인공은 사회생활과 소설,그리고 아직도 꺼지지 않은 산문(山門)에 대한 그리움에 방황한다.고액의 원고료를 받아 혼수상태에 이를 정도로 술마시고 난 아침의 몽환 속에서 주인공은 육체적 자 신과 정신적자신을 분리해 곰곰 생각해본다.산문을 향하는 마음에서 10년 동안 간직해온 가사를 꺼내 불태운다는 것이 이 책에 실린 단편.사바에 와서'의 줄거리다. 가사를 태우며 주인공은 이렇게 깨우친다.“떠나거라.푸른 연꽃은 절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세상의 고해 속에서도 눈만 밝으면 푸른 연꽃을 찾을 수 있다.”진흙탕 속에서 개같이 서로 물고 뜯고 있는 요즘 우리 세상.그래 아비규환을 연 출하면서도 또 구원은 저 세상에서 빌려는 세태.그러나 이승의 삶 속에 도가 있고 구원이 있다는 것을 이 시집과 소설집은 자신들의 치열한 삶과 글쓰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경철 기자〉 일상적 삶속에도 도가 있고 구원이 있음을 시.소설로 보여주고 있는 임영조 시인과 작가 황충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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